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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갑만 한 여행 세트면 만사 오~케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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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31면

일 년에 서너 번 해외로 떠난다. 사진작업 혹은 휴식을 위한 여행이다. 여행 경력이 쌓일수록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여행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 혹은 비상대책을 갖추는 능력이라 할까.

윤광준의 생활 명품 이야기-TROIKA사 휴대용 미용세트

나의 중요한 노하우는 간편한 짐 싸기다. 혹시 필요할지 모르므로 이것저것 챙겨넣다 보면 짐의 부피는 만만치 않다. 여행은 적당한 불편을 즐기는 편이 낫다. 압축과 통합, 이것이 짐 싸기의 핵심이다. 나는 경험을 통해 정리된 용품만이 담겨 있는 여행 백을 준비해 두고 있다. 언제라도 이 작은 백 하나만 들고 떠나면 만사 오케이다. 열흘 이내의 일정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여행지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의외로 당혹스럽게 하는 물품들이 있다. 평소 관심조차 갖지 않던 자잘한 잡동사니들. 예를 들면 손톱깎이나 면도기, 소형 드라이버, 칫솔, 가위…. 모든 것을 갖추어 놓지 않으면 꼼짝하지 않는 럭셔리한 패키지여행족은 이해 못할지 모른다. 인간은 사소한 불편과 고통을 더 참지 못한다. 여행지에선 수염과 손톱이 더 빨리 자라고 치아도 쉽게 더러워진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면 이런 물품을 살 여유도 살 데도 마땅치 않다. 집 밖에만 나오면 편의점이 즐비한 한국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을 땐 이미 늦다. 대비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해외여행 이십여 년 만에 독일 ‘트로이카사’가 만든 휴대용 미용세트를 찾아냈다.
담뱃갑만 한 크기의 여행 세트엔 평소의 불편을 해결해줄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누가 이런 물건의 필요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필요가 아니라 완성이다. 완벽하게 마무리해 놓은 용품세트를 보면 감탄부터 나온다. 그 감탄은 즉각 대응의 방법으로 꽃을 피운다. 헐겁게 풀린 안경다리의 나사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일은 이제 반복하지 않는다.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없는 칫솔을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가제트 형사의 로봇팔 같은 만능 손잡이가 칫솔 대용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덥수룩한 수염은 어디서든 한 컵의 물만 있다면 깨끗하게 정리된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케이스는 가장 철저하다는 미국의 공항 보안장치도 통과한다. 가위 때문에 온 짐을 다 풀어헤친 기억이 있는 내게 ‘트로이카’는 경이로움이다. 나무 그늘에 해먹을 걸고 누워 여유롭게 손톱 손질을 하는 즐거움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신지? 문득 삐져나온 코털을 발견하고 손으로 뽑던 추잡함을 기억하시는지? 여행지에서 품위를 지키기 위한 바탕은 바로 이런 자잘한 생활의 정리일지 모른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말한다. 이 당연한 명제를 실현한 공로는 섬세한 인간들의 몫이다. 난처했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개선하는 노력, 기능을 기능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통합의 사고, 이를 완성하는 능력은 디테일을 메워가는 인간의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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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씨는 사진가이자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체험과 취향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바꿔 이름난 명품 마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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