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足과 滿足 사이 20년 광대의 사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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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02면

‘천하 명창’이라 이름난 정광수(1908~2003) 선생이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남긴 한마디가 있다. “일생 동안 발 족(足)자가 들어간 만족(滿足)과 부족(不足)이 무서웠소.” 이 말을 기록한 진옥섭(43)씨는 이렇게 해석했다. “부족을 채워 얻은 만족은, 결국 부족을 알게 했다. 이렇게 만족과 부족 사이를 오가며 쉼 없는 발소리를 채워넣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선생의 소리꾼으로서의 일생이었다.” 진씨 또한 만족과 부족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던 광대였다. 세상에 돌아앉았던 기생, 무당, 한량을 일으켜세워 무대의 꽃으로 피워낸 사연을 책 『노름마치』(생각의나무 펴냄)로 엮어내며 그는 추임새를 넣는다. “노니소(逍)! 노닐어요(遙)! 놀아유(遊)!”

『노름마치』쓴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씨

진옥섭씨는 전통예술 기획ㆍ연출가로 뼈가 굵었다. ‘여기 심청이 있다’ ‘이 땅의 사람들’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 ‘여무, 허공에 그린 세월’ ‘풍물명무전’, 그리고 공연기획상 전무후무하다고 소문난 ‘전무후무(全舞珝舞)’까지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표 못 팔면 피 판다”는 심정으로 전통 예술 알리기에 목숨을 걸었다. 『노름마치』는 그의 말을 빌리면 “진도 홍주(紅酒) 방울처럼 똑똑 떨어지는” 표현을 얻으려 기둥에 머리 박아가며 쓴 글이다. 노름마치란 최고의 명인을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

‘어마어마한 노인들의 숨소리에서 배운 언어의 세계’가 거기 촘촘하게 박혀 있다. 옛 어르신이 최고의 예술을 부를 때 쓰던 말, ‘옥당(玉堂-구슬의 동글동글함처럼 완전한 예술)’을 향한 진씨의 글쓰기는 눈물겹다.

“무대 준비하며 홍보 자료를 언론사에 돌리고 나면 핸드폰을 땀나게 쥐고 다녔죠. 목욕탕 가서도 한증막엔 핸드폰 쥔 손을 흰 수건으로 둘둘 말고 갔어요. 이때 몸뚱이에 용이나 호랑이를 그려넣은 분들을 조심해야 했죠. 제가 ‘연장’ 든 것으로 착각하고 조건반사 반응을 보인 ‘깍두기’도 있었거든요.”

진씨는 “서양 예술은 꽤 많은 지식인이 달라붙어 요리조리 뜯어보면서 정작 우리 예술은 후벼파는 이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찰진 단어가 사라지는 현실을 그는 안타까워했다. “결국 전통을 이해하는 것은 그 낯선 말귀를 알아듣는 것이죠. 전통 예술은 옛말에 현상을 압축해 대물림했거든요.”

‘박수가 쏟아져 들어오던 춤꾼들 옆자리는 벼슬보다 나았다’는 그가 말한다. “이 책은 전 국민에게 보내는 전통 예술 보도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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