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몸을 따라 흐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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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30면

세월을 뛰어넘는 곡선미

인체를 감싸 안는 곡선 디자인의 의자들이 최근 한국의 인테리어 시장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멀리 이탈리아와 덴마크 등에서 날아온 이 의자들은 과감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워낙 튀는 디자인인지라 의자 하나만 거실에 두어도 집 전체를 모던하게 만든다. 그동안 이 의자들은 ‘작품’이라는 희소성 때문에 한국의 소비자들이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의자 하나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는 높은 가격이 큰 장벽이었다. 그러나 이들 작품에 담긴 역사와 디자인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늘면서 생활 속 가구로 거듭나고 있다. 작품으로 수집하겠다는 이부터,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질리지 않는 매력에 과감하게 투자하겠다는 이들까지 이유는 다양하다.

마크 뉴슨이 이탈리아 가구회사 카펠리니를 위해 디자인한 의자. 디옴니 

‘프리츠 한센’에서 판매하는 ‘에그 체어’가 만들어진 것은 1958년. ‘덴마크식 모던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추앙받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아른 야콥센이 만든 작품이다.

야콥센은 자연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부드러운 등받이가 엉덩이까지 이어져 한 몸으로 사람을 받아 안는 안락의자인 ‘에그’, 백조의 우아한 날갯짓을 닮은 ‘스완’, 개미의 잘록한 허리를 모방한 검은색의 탁상의자 ‘앤트’가 그런 작품들이다. 크롬 처리된 회전 받침대를 제외하고는 한 덩어리의 조각품처럼 만들어진 ‘에그’를 보면 의자 이름을 몰라도 달걀을 연상할 수 있다. 그 의자에만 앉으면, 포근한 어미 닭의 품에 안기는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야콥센의 이름을 널리 알린 의자는 ‘넘버 7 체어’라고도 알려진 ‘모델 3107’이란 의자다. 이 의자는 전 세계에 무려 500만 개가 팔려나갔다.

‘머시룸’을 만든 피에르 폴린은 의자 디자인으로 60년대 인테리어 분야에 혁명을 가져왔다. 금속 프레임 위를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스펀지 같은 ‘폼(foam)’으로 덮은 가구를 내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의자라면 네모반듯해야 한다거나, 소파라면 나무로 프레임을 만들어 가죽을 덧씌우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이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조각을 전공했던 폴린은 금속을 구부려 자유자재로 모양을 만들어냈고, 60년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만든 신소재인 ‘폼’을 이용해 편하면서 새로운 형태와 촉감의 모던한 가구를 내놓았던 것이다. 그는 ‘머시룸’ 외에도 ‘리본’, 꽃봉오리를 연상시키는 ‘플라워’, 사람의 혀를 떠올리게 만드는 의자 ‘텅’을 선보였다.

디자이너들의 실험무대

가구는 디자이너들의 꿈의 실험장이다. 가구는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예술품인가 하면, 인간의 몸을 어떻게 편하게 할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공학기술의 집결품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건축가ㆍ산업디자이너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가구라는 분야에 뛰어들었다. 2003년 이탈리아 가구회사 ‘미노티’를 위해 ‘호크니(Hockney)’라는 소파 등 거실 세트를 만든 로돌포 도르도니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 밀라노 출신 디자이너는 건축가로 출발해 상품 마케팅과 디자인, 이미지 전략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가구도 만들었다. 패브릭의 이음매가 잘 보이지 않아, 한 마리 누에고치처럼 보이는 뭉툭한 소파가 그가 만든 ‘호크니’다.

도르도니처럼 밀라노의 디자이너들은 특정 분야의 디자인만 하지 않는다. 전후 이탈리아의 대표적 디자이너였던 비코 마지스레티, 마르코 자누소 등은 가구ㆍ전등ㆍ사무용품ㆍ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이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했다. 겉모습은 매번 달라도 그들의 작품은 아름다움과 편리함이라는 두 가지 미덕을 갖추고 있기에 세월과 상관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는 밀라노만의 특성은 아니다. 가구 디자이너들 중에는 팔방미인이 많다. 호주 출신의 산업디자이너 마크 뉴슨도 레스토랑을 짓고, 컨셉트카를 만들면서 가구도 디자인했다. 태아의 웅크리고 있는 듯한 모습을 모티브로 삼은 의자 ‘엠브리오’, 유리 섬유라는 독특한 소재를 사용한 의자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가구회사 ‘카펠리니’를 위해 디자인할 때는, 흰색 바탕에 알록달록한 캔디 컬러를 포인트로 넣은 의자도 만들었다.

디옴니 02-3442-4672, 웰즈 02-511-7911, 인엔 02-3446-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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