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끝으로 쏠리는 골드러시·실버러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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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26면

골드와 실버로 치장한 구두들. 왼쪽부터 지미추의 ‘트릭시’, 샤넬의 ‘차르’, 마놀라 블라닉의 ‘아이다호’, 지미추의 ‘헵 메탈릭’. 

지난해 망설임 끝에 골드와 실버 구두를 장만했다면 안심이다. 올해 역시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리며 더 확실한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패션계에 불어닥친 퓨처리즘(미래주의ㆍfuturism)의 영향이다. 퓨처리즘이란 20세기 초 도시의 문명화를 표현한 이탈리아 전위예술이 시초며, 패션계에선 1960년대 파리 디자이너들이 플라스틱ㆍ금속 등을 소재로 미래지향적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유행이 됐다. 영화 ‘매트릭스’의 공상과학적인 이미지나 ‘스타워즈’의 우주ㆍ사이버 세계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퓨처리즘의 매력은 차갑지만 절제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구현한다는 것. 40여 년이 지나 복고의 바람이 분 셈이다.

2007 봄·여름 구두 트렌드

골드ㆍ실버 구두는 퓨처리즘 스타일을 만들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다소 화려하더라도 옷이 아닌 액세서리로 부담이 적기 때문. 비닐 PVC로 만들어 발등을 훤히 드러내는 샌들같이 이색 소재가 눈길을 끌지만 실용성과 대중성 면에서 골드·실버 구두가 더욱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골드ㆍ실버의 유행은 또 다른 패션 트렌드, 미니멀리즘의 영향도 크다. 올 시즌 옷들이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 검정ㆍ흰색의 모노톤 색상으로 대표되는 미니멀리즘을 구현하면서 그만큼 구두는 더 화려해진 것. 그러나 디자인은 특별한 장식이 없어 골드ㆍ실버의 광택이 한층 빛난다. 밋밋한 의상과 포인트 구두의 만남은 이번 봄ㆍ여름 패션의 공식이 됐고, 블랙과 골드ㆍ실버는 그중 가장 고급스러운 조합이다. 지난해엔 풍만한 느낌의 골드가 더 우세했다면 올해는 중량감을 줄인 실버가 강세를 보인다는 점은 참고할 것.

몇 년 전만 해도 골드나 실버는 아무나 소화하기 힘들었다. 너무 튀는 까닭에 어쩐지 화려한 파티에 가야 할 것 같고, 연예인쯤 돼야 어울려 보였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이유로 골드와 실버를 외면한다면 생각을 바꿔보자. 올 골드와 실버 구두는 한층 부드럽고 은은한 느낌의 광택을 선보이고 있어 캐주얼 복장에도 ‘믹스 앤 매치’가 충분히 가능하다. 학교와 직장에선 패션 포인트로, 특별한 저녁 모임엔 여성스러운 느낌의 액세서리로 활용해도 무방하다. 그래도 튀는 게 부담스럽다면 가죽 가장자리나 버클에만 골드와 실버가 쓰인 디자인을 골라도 좋다.

더 높아진 굽

송곳처럼 뾰족한 스텔레토힐이 복고의 영향으로 더 높아졌다. 10㎝를 훌쩍 넘는다. 겨울부터 등장한 핍토(발가락 끝이 보이는 신발)에선 예외가 없다. 예쁘긴 하지만 ‘절대 감당 불가’라면 대안이 있다. 앞굽이 두툼한 플랫폼힐은 굽이 높아져도 앞이 어느 정도 받쳐줘 부담이 훨씬 덜하다. 뒷굽도 앞굽에 맞춰 적당히 안정감 있는 두께다. 키가 작은 여성은 더없이 반길 스타일이다. 그러나 너무 높게 신게 되면 몸 비례가 불균형해 보이니 조심해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미니스커트, 미니 드레스, 짧은 반바지, 스키니 진에 무난하게 어울리는 것도 큰 장점이다.
웨지힐(일명 통굽)도 지난해에 이어 물러서지 않는다. 앞코부터 뒤까지 굽이 하나로 붙어 있어 무거워 보이는 단점을 보완, 투박함을 줄인 디자인이 많아졌다. 구두 색깔을 밝고 컬러풀하게 매치한 디자인이 눈에 띄고 굽을 투명하게 만들어 가벼운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도 했다. 아예 굽 높이를 5㎝ 아래로 확 낮추거나 폭을 날렵하게 줄인 제품도 눈에 띈다.
한편 굽이 1㎝ 안팎인 플랫슈즈는 ‘높은 굽’ 유행과 상관없이 더 다양한 색깔을 갖춘 스테디셀러가 됐다.

슬리퍼형 대신하는 스트랩

굽이 높아지면서 스트랩으로 여성미를 한껏 강조하는 디자인이 많아졌다. 발등과 발목을 가는 띠 모양의 장식이 감싸는 T자형 앵클 스트랩이 대세다. 이미 국내외 브랜드에서 다양한 디자인의 샌들로 선보이고 있다. 스트랩은 최대한 단순화해 날렵한 각선미에 시선이 가게 하고, 맨발로 신었을 땐 자연스러운 섹시함이 묻어나게 한다. 여러 개의 가는 줄로 발목을 묶는 ‘전사’ 스타일과 대조되는 느낌이다. 굽이 굵을 땐 스트랩도 두꺼워져 균형감을 이룬다. 크리스털이나 색깔 있는 주얼리로 발등을 감싸 고급스러움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나 발목이 굵은 여성은 다리가 짧아 보일 수 있으므로 장식이 절제되고 가는 스트랩으로 선택해야 한다.

다양한 소재들

아무리 골드와 실버가 유행이라지만 봄인데 알록달록 구두를 외면할 순 없다. 이럴 땐 구두 색을 더 선명하게 해주는 ‘페이턴트’ 소재가 궁합이 맞는다. 페이턴트는 얼굴을 비출 만큼 반짝거리는, 흔히 에나멜로 알고 있는 가죽이다. 니스의 일종을 가죽 표면에 칠해 가죽의 손상이 적으면서 방수 효과도 있다. 빨강ㆍ녹색부터 파스텔톤까지 다양한 색깔의 제품이 많아 전체 옷차림의 포인트를 주는 데 적격. 이미 봄 초부터 매장을 장악했다. 이 밖에 야성적인 느낌의 뱀피 구두와 겨울에나 어울릴 법한 벨벳ㆍ스웨이드를 활용한 구두도 종종 눈에 띈다.

또 구두 앞쪽보다 굽을 장식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굽의 소재도 다양해졌다. 웨지힐의 경우 신었을 때 더 가볍고 보기에도 재활용이 가능해 친환경적인 느낌을 주는 코르크가 사용되거나, 굽을 천으로 감싸 그래픽 패턴을 넣은 제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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