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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청와대 비서관이 왜 검찰에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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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범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지난 12일 대검 청사를 찾아 송광수 검찰총장과 김종빈 대검 차장을 만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야당 측이 불법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의 청와대.검찰의 교감설을 제기하면서 朴비서관의 경질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물론 朴비서관과 대검 수뇌부는 수사와 관련한 이야기는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朴비서관이 총선 출마를 앞두고 이임 인사차 들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대검을 찾은 12일은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안희정씨가 검찰 조사를 받고 있거나 소환되던 날이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까지 민정2비서관으로 법무부.검찰의 연결 채널 역할을 하던 그가 검찰을 방문해 30분간 이임인사만 했다는 것은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그가 검찰 수뇌부를 만난 지 이틀 뒤인 지난 일요일 盧대통령은 4당 대표와의 회담 자리에서 "불법 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발언했다. 그러니 盧대통령이 불법 대선자금 규모를 이미 파악하고 있고, 朴비서관이 대검을 방문해 이를 사전 조율한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盧대통령이 사건 수사와 관련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5월 안희정씨가 나라종금 사건으로 조사받게 되자 "그는 나의 측근, 동업자요 동지다. 나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했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사실이 공개된 지난달 16일엔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도 했다. 이번 대선자금 발언의 경우 청와대 측은 깨끗한 선거였음을 강조하기 위한 '화법' 성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朴비서관과 검찰 수뇌부는 당시 대화 내용을 가감없이 공개해야 한다. 만일 수사 간섭 등 그의 월권행위가 있었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