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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죽음? 하루하루 사는 게 황홀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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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08면

사진 신인섭 기자 

1. 늘 떠났다

장정일이 만난 작가 - 윤대녕

작가와 만나기로 한 날,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며 마음이 설레었다. 그로서는 꽤 파격적인 작품이었던 ‘수사슴 기념물과 놀다’에 등장하는 ‘이반’이 아닌데도 그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푼 내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해졌다. 아침식사를 하며 펼쳐 들었던 신문에 다음과 같은 표제의 기사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열 명 중 네 명은 연소득 100만원도 안 돼/ 문인들, 글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렵다/ 기초예술연대 조사…대부분 다른 직업 겸해.”

윤대녕 소설의 주인공들은 늘 어디론가 떠난다. 우연히 경복궁에 들렀다가 근정전을 호위하는 십이지신 중 하나인 석마(石馬)를 본 남편은 그날 저녁 아내에게 말한다. “요즘 나는 자주 이런 꿈에 시달려. 잠결에 누가 뚜벅뚜벅 다가와 나를 툭툭 치며 잠을 깨우는 거야.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처럼 말이지.” 이튿날 새벽 남편은 가족을 팽개친 채 자신도 모르는 ‘어딘지’로 떠난다(‘말발굽 소리를 듣는다’).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멀쩡한 등장인물들의 만행(蠻行). 하지만 이처럼 갑작스레 사라지는 만행자로 가득한 윤대녕의 소설은, 묘한 흡인력을 가지고 우리를 유인한다. 까닭은 승진과 재(財)테크라는 아귀다툼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내면에도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할 어떤 그리움이 있다는 것을 그의 소설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간부인 필자의 친구 하나는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를 가서 조그만 칼국숫집이나 찻집 같은 곳에 앉을 때마다, 꼭 이렇게 묻는다. “여기서 이런 집 하나 차리려면 얼마나 들까?” 앉은 자리에서 가게를 휘휘 둘러보며 금방이라도 칼국숫집을 차릴 듯이 말하는 친구를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말한다. ‘완전 윤대녕 소설이네.’

2. 문학은 질문이다

서울 교보문고 희곡 코너 앞에서 4년 만에 만난 작가와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맥주 몇 병을 마시며, 스스로 ‘자발적 유배’라고 표현하는 2년여의 제주도 생활과 서울로 복귀한 근황을 들었다. “2003년 4월에 가서 2005년 4월에 다시 일산으로 돌아왔어요. 제주도에 갈 때는 슬럼프에 빠져 있었죠. 몸과 마음을 혹사해 건강도 좋지 않았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즐겁게 살았습니다. 내 평생 그렇게 실컷 놀아본 적은 없을 겁니다. 만날 바다에 나가 고기 잡고 놀며 가끔 틈나면 소설을 썼죠. 2년을 그렇게 보냈더니 몸에 힘이 들어오더라고요. 아, 그래서 올라갈 때가 됐다고 생각했죠. 특별한 각오는 없었습니다. 다만 소설을 또 계속 쓸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2003년 늦가을, 우리는 또 7여년 만에 만난 적이 있다.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그가 대구의 어느 대형 서점에서 문학강연을 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왔을 때다. 그때 나는 서점 근처의 백화점 정문에서 기다렸고, 강연을 마친 그와 삼덕동 골목의 관음사 맞은편 카페에서 다섯 시간 넘게 얘기를 나누었다. 강연장에 20여 명밖에 오지 않았다는 말에 대구가 고향인 나는 좀 부끄러웠고, 1990년대 중반께 제주도에서 석 달을 살았던 경험이 있는 나는 ‘섬은 아무리 커도 섬이라서 있다 보면 답답하다, 제주 생활을 빨리 청산하라’고 권했던 것 같다. 또 우리는 같은 1962년생인 채영주의 너무 이른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했고, 소설가로 먹고사는 일의 어려움과 강단(講壇)의 유혹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직장인들이 직장 이야기에 열을 올리듯, 소설가들도 만나면 직장 이야기에 바쁘다. 소설은 계속 독자들에게 읽힐 것인가? 아무런 대안도 없고, 또 그렇다고 작가들이 구원을 요청한 것도 아닌데 가끔씩 언론에 회자하는 ‘문인들, 글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렵다’ 운운하는 보도는 누굴 위한 것일까? 현재 한국 소설은 일본 소설 판매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모국어를 사용하는 한, 작가가 사회적 집단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지기는 불가능해요. 그러니 식민지와 전쟁 체험, 가까이는 70년대 개발독재 시대와 87년 6월 항쟁의 기억을 모두 떨쳐버릴 수는 없어요. 그게 베이스로 깔려 있으니 우리 소설은 무겁죠. 그런데 최근 번역돼 들어오는 일본 소설의 경우 대개는 패스트푸드나 만화처럼 부담 없이 소비할 수 있잖아요. 원래 문학은 질문과 고민을 하는 것이라서 대중성 없는 품목이고, 독서란 노동이나 마찬가지죠. 문학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소설의 죽음’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삶의 수수께끼가 우리를 괴롭히는 한, 소설은 계속 쓰이고 읽힐 겁니다.”

3. 이제 돌아왔다

윤대녕의 주인공들이 ‘은어(銀魚), 사막, 소, 말, 별, 사슴, 제비, 편백나무, 낙타’를 찾거나 따라서 ‘지금-여기’를 자주 떠나는 까닭은, 일상의 비루함과 지루한 반복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이 있는 가정마저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획일성의 성채(城砦)일 뿐이다. 주인공들은 그래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혹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을 찾아 떠난다. 비록 여행이 완수되지 못하고 회귀로 끝나더라도, 그러한 시도나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믿으면서. 신화학(神話學)적으로는 성소(聖所) 찾기이고, 미학적으로는 에피파니 체험이라고 해야 할 그의 소설은 삶의 재생에 바쳐진다. 작가는 꽤 많은 장편소설(4편)을 발표했지만, 독자들에겐 낯설다. 모두들 그의 작가적 본령이 중ㆍ단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흔히 장편소설은 작가에게 ‘목돈’을 마련해 줄 수 있는 호기이기 때문에, 그것이 작가에겐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대목이야말로, 한국 문학이 작가에게 모종의 기대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올해 초, 3년 만에 출간된 다섯 번째 창작집 『제비를 기르다』(창비)는 확실히, 그 어떤 기대를 충족시켜 준다.

누군가 먼저 훌쩍 제자리를 떠나고, 누군가는 남겨지거나 아니면 먼저 떠난 사람을 따라간다. 그러나 뒤따라 간 사람은 먼저 간 사람의 망연한 흔적만 찾아볼 뿐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이게 윤대녕의 소설 공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창작집에 실린 ‘못구멍’과 ‘마루 밑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은 떨어지지 않고 ‘동행’한다. 화자인 나의 심정이 고모의 파란 많은 아픔에 섞여버리는 ‘탱자’는 이번 작품집의 백미다. 이런 ‘동행’에의 권유는 세 번째 창작집에 실렸던 ‘상춘곡’ 같은 작품에서부터 있어 왔지만, 아무튼 지금껏 고수했던 ‘홀로 가기’의 세계와는 다른 변화로 보인다.

“몇 년 전부터 ‘비루한 일상의 반복’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혼자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지치기도 했고, 전에 없이 사람이 좋아지면서 하루하루 사는 게 황홀하다는 석연찮은(?) 느낌이 몰려왔습니다. ‘사는 것 그 자체’가 말이죠. 아마도 중년에 접어들며, 죽음에 대한 사유가 시작되면서 찾아온 변화 같습니다. 그때부터 타인이 눈에 들어오고 ‘복수로서의 나’를 인식하게 됐죠.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요한 명상의 세계에서 홀로 침묵하기를 바랐건만, 생물학적 나이가 저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소설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더군요.”

4. 중년, 수다를 떨다

윤대녕 소설의 압도적인 이미지는 침묵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의 감정은 물론이고 서사마저 비밀에 부치려고 한다(즉 독자에게 결론을 가르쳐주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윤대녕은 말을 아껴왔다. 이미지로 말하려는 노력 때문에, 서사는 왕왕 비약되거나 단절되고, 그 탓에 주인공은 길을 잃고 막막하게 된다. 그런데 『제비를 기르다』에서는 이미지 대신 ‘수다’가 나선다. 여전히 이미지는 승하지만, 말이 많아진 윤대녕의 소설은 이미지가 끊어놓은 앞선 소설들의 비약과 단절을 메우고, 잃어버린 주인공들의 길을 찾아주기까지 한다. 이전의 소설에서는 침묵이 삶의 비의(秘意)를 가리켰다면, 수다는 삶과 밀착한다.

“중학교 때부터 소설을 습작했고, 군을 제대하면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소설이나 소설가에 대한 환상은 없었어요. 문학을 통해 인생론을 터득하고 싶었을 뿐이죠.”

작가와 만나기로 한 날,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며 마음이 설레었던 정체는 다른 게 아니었다. 『제비를 기르다』를 읽으며 ‘내 옆자리로 다가온’ 시선에 감복(感服)했다는 것과, 빨리 그를 만나 수다를 떨고 싶었던 것이다. 그 수다 속에 ‘소설의 죽음’도 있고, 소설가의 살림살이도 있고, 소설 쓰기의 고민도 있었다고 말한다면 사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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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작가'라고 불리는 장정일씨는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 책평론가이자 독서광입니다. 행복한 책읽기의 비밀을 파헤치는 독서일기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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