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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한류 마케팅 롱테일 전략이 딱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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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21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인터넷 문화 매거진인 와이어드(Wired)의 회의실에서 만난 크리스 앤더슨은 매우 소박하면서도 자유분방해 보였다. 헐렁한 바지에 노타이 차림, 벗어진 머리…. 작은 회의실에는 장식도 거의 없었다. 그의 외증조부인 조 래버디는 19세기 미국에서 무정부주의자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었다. 앤더슨의 몸에는 기존 질서와 권위에 도전하는 피가 흐르고 있는 셈이다.

롱테일 이론 주창자 크리스 앤더슨 # 중국·동남아, 문화 소비 환경 달라 … 대박 꿈꾸기보다 다양한 상품으로 공략해야

앤더슨은 “나는 한국을 잘 아는 사람이다. 한국은 매우 흥미로운 나라”라고 말문을 열고, “한국의 메이저 신문인 중앙일보가 창간한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앤더슨은 영국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의 홍콩특파원으로 외환위기 와중인 1997~98년 9개월 동안 서울에서 취재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한류’에 대해 언급했다. “한류 문화에 대한 얘기를 듣고 이게 바로 롱테일 이론이 잘 적용될 상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과 동남아가 한류의 최대 소비시장이라고 하지만 나라마다 문화 소비 환경이 다양합니다. 영화ㆍ드라마ㆍ음악 등 다양한 한류 상품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소비계층에 판매하는 데는 롱테일 식 마케팅 전략이 매우 유용합니다.”

앤더슨은 한국의 인터넷 환경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한국이 미래의 성장동력 때문에 큰 걱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어느 나라보다 우수한 인터넷 인프라를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다양한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앤더슨은 롱테일 이론에 대해 “소비자와 생산자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찾아준다”며 “소비자는 입맛에 꼭 맞는 제품을 구입할 수 있어 좋고, 생산자는 판매량이 적어도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고 팔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한국 독자들을 위해 롱테일 이론을 좀 더 쉽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수많은 비인기 상품 판매량을 모두 합해보면 전체 판매량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비인기 상품의 판매량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수평선과 비슷합니다. 하나하나는 판매량이 아주 미미하기 때문이죠. 긴 꼬리 모양입니다. 롱테일은 이처럼 개별 판매량은 적지만 이를 모두 더하면 놀라운 규모가 된다는 이론입니다. 인기 상품 20%가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는 20 대 80 법칙의 반대라고 할 수 있죠.”

그는 “몇몇 상품이 대량으로 유통되는 매스시장(Mass Market)은 결국 종말을 고할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도 이런 상황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수한 브랜드가 거래되는 틈새시장(롱테일 시장)이 매스시장에 강력하게 도전장을 낼 겁니다. 블록버스터(대박) 상품이 퇴조하면서 그 틈새에서 다양하고 많은 롱테일 시장(틈새시장)이 꽃을 피우는 것이죠.”

그는 ‘종말’이나 ‘퇴조’ ‘도전’ 등의 단어에 강한 악센트를 주었다. 앤더슨은 미래를 이야기할 때도 단서나 전제조건을 달지 않았다. 예언가처럼 직설적인 언어를 구사했다. “디지털 제품이든 일반 상품이든 상관없어요. (제품별로)정도의 차이가 날 뿐 롱테일 시장의 부상은 대세입니다.”

앤더슨은 ‘구글’이 인터넷 세상을 평정하는 최강자로 부상한 것도 바로 롱테일 시장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상에선 고객의 입맛이 워낙 다양하게 세분화돼 있기 때문에 개별 상품의 판매량은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구글은 이 사실을 간파해 적은 돈을 받고 무수히 많은 광고를 끌어 모았습니다. 많은 고객이 몰릴 만한 대형 광고를 한두 개만 실어 큰돈을 챙기는 전략을 과감히 포기한 것이죠.” 앤더슨은 아마존(소매)과 이베이(경매), 네트플릭스(비디오 대여)도 롱테일 이론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갑자기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긴 꼬리 부분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되느냐”라고.

“상품이나 서비스 성격에 따라 다릅니다. 음반 부문은 롱테일 시장의 판매량이 50%에 이르죠. 미국 온라인 시장의 책 판매량은 전체의 25% 수준에 달합니다. 따라서 롱테일 시장의 비중은 업종별로 적게는 25%, 많게는 50%에 이릅니다.”

롱테일 이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얼마든지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뉴욕 타임스나 이코노미스트 지가 내 이론을 온라인 비즈니스와 엔터테인먼트 영역을 넘어 적용하기 어렵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들의 비판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일반 상품의 판매가 늘고 있다는 점이 그 증거입니다. 예를 들어 수퍼마켓 주인이 한 가지 비누 브랜드만을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를 함께 진열하는 사실도 주목해야 합니다. 롱테일 이론은 어느 시장에서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앤더슨은 미디어 산업에도 롱테일 이론이 잘 적용된다고 말했다. “맞춤형 뉴스가 각광받는 시대가 곧 오는 겁니다. 미디어 업체들은 블로그 등을 통해 독자의 참여와 소통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아울러 소수의 마니아 고객 등이 좋아하는 전문적인 내용의 기사를 제공하는 공간도 열어주어야 합니다.”

그는 최근 글로벌 키워드인 ‘웹2.0’도 롱테일 이론과 통한다며 말을 맺었다. “롱테일 이론과 웹2.0의 공통분모를 꼽는다면 소비자가 생산자로 변신하는 ‘생산의 민주화’ 또는 ‘유통의 민주화’입니다. 미래 경제를 예측하려면 이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신중돈 샌프란시스코 지사 이사
정리=강남규·주영기 기자

WHO?
美 인터넷 매거진 ‘와이어드’ 편집장
영국 이코노미스트 전 홍콩특파원
1997~98년 서울에서 외환위기 사태 취재
미국 조지 워싱턴대 물리학 전공
로스 알모스 연구소 연구원
저서:『롱테일 경제학』(2006년), 『풍요의 경제 학』(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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