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을 보는 세 가지 시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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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13면

공무원이 본 전경련 재경부 신제윤 국제금융심의관
설령 4대 그룹 회장이 온다고 잘되겠나

전경련을 보는 세 가지 시각

전국경제인연합회를 가장 잘 안다는 공무원-. 재정경제부 신제윤(49) 국제금융심의관의 입에선 쓴소리가 쏟아졌다. 그는 전경련에서 파견 근무한 ‘공무원 1호’였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특명을 받고 2004년 봄부터 1년간 전경련 배 속에 들어앉아 대그룹과 오너 회장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신 심의관은 먼저 “나는 재벌 옹호론자”라고 했다. 그러나 전경련에 대해선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전경련이 회장을 뽑으려고 시끄러운데 누가 되든 똑같을 거예요.” 그는 집안싸움 양상으로 번지며 시끌벅적한 전경련 회장 선출에 화살부터 날렸다.

신 심의관은 이젠 ‘회장 인물론’이 아니라 ‘전경련 역할론’에 초점을 맞출 때라고 했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의 연임 불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개혁 요구,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의 격한 발언 등을 보면 전경련이 분명히 위기예요….” 하지만 그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전경련 수장으로 와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아무리 거물급 인사가 와도 한참 꼬인 실타래를 풀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같은 거물급 인사가 포진했을 때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경련의 손발이 착착 맞은 건 아니었어요.” 신 심의관은 한국 재계의 역학구도가 바뀐 사실을 주목하라고 했다. “1970년대 이후 개발경제 시대엔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 아래 수출 증진책, 금융 지원, 계열사 확장 등에서 한목소리를 냈지요.” 정(政)은 경(經)을 밀어주고, 경은 정을 떠받치면서 대그룹들은 운명 공동체로 똘똘 뭉쳤다는 것이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대그룹들이 구조조정의 칼바람 속에서 생존을 위해 전문화와 다변화를 추진했어요. 지배구조·비자금·분식회계 등의 문제는 이를 부채질했어요.” 기업들이 공통의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지면서 전경련의 존재 의의도 빛이 바랬다는 얘기다. 그러나 신 심의관은 “전경련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정책 건의를 하는 싱크탱크로 전면 쇄신하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정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그룹을 아우르는 행정적 조직은 소규모로 남겨 두면서 싱크탱크 역할을 강화하는 게 대안”이라고 했다. 신 심의관은 “기업들은 수출 많이 하고 세금 잘 내면 된다”고 했다.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전경련의 존재 의의도 여기서 찾았다. “전경련이 ‘국가나 재계를 위해 뭔가 하겠다’고 폼 잡고 나선다면 그게 망하는 지름길이지요.”

전경련 옹호 목소리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시장경제 전도사로서 할 일 앞으로도 많다

회장 선임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을 제31대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했다. 전경련 같은 이익단체는 주로 회원사들의 이익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이 상례다. 그런 전경련이 1990년대 이후 시장경제를 주장하고 나섰다.

신임 조 회장도 취임사에서 시장경제 창달을 강조했다. 과거의 규제 획득 기능과는 정반대다. 월등히 커진 경제규모와 치열한 국제경쟁이라는 경제환경하에서 정부 간섭은 기업활동의 장애물이라는 인식 때문이며, 사실이 그렇다.

전경련의 기능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명분도 뚜렷해졌다. 전경련을 통해 큰 시장이 실현되고 정부 권한이 축소되면 정경유착의 오명을 벗을 수 있다. 또한 국제시장을 무대로 뛰는 회원사 간 이해관계 조정도 더 쉬워졌다. 판이 국제시장으로 옮겨가면 회원사들 간 다툼의 여지도 줄어든다.

이제 전경련은 회원사 간의 내적 이해관계 조정은 물론, 국제경제 환경의 변화에 당면한 회원사들의 외적 경쟁력 향상을 위한 진로 탐색과 그에 따른 정보 수집·제공 등에 역점을 둘 수 있다.

당면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 넓고 깊게 퍼져 있는 반(反)시장·반기업 정서를 불식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한국경제연구원과 자유기업원을 한 단계 더 높은 싱크탱크로 확대 편성해 연구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산하기관에 산재(散在)한 교육 프로그램은 경제교육재단을 설립해 통합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전경련이 시장경제를 지키는 일에 충실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민들의 호응도 따를 것이다. 좌파가 말하는 부정적 의미의 ‘자본의 논리’가 아닌 수많은 사람의 식탁을 지키는 ‘정의로운 자본의 힘’을 보여주면 된다. 이제 전경련은 신임 회장을 중심으로 모든 회원사의 이해를 고루 대변하고 시장경제를 주창하는 협회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조직으로 재정비하는 일이 시급하다.

승자(勝者)는 모래밭에서도 풀을 보고, 패자(敗者)는 풀밭에서도 두세 군데의 모래땅을 본다. 전경련은 승자가 돼야 한다.

전경련 비판 목소리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 교수
대한상의·경총과 통합 모색할 때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표적인 재벌 1세대 창업 기업인들의 모임으로 출발했다. 개발독재 시대에 전경련은 정부의 압축성장 전략 파트너로서 경제발전을 선도했다. 그러나 이런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은 정경유착의 매개체로서 정치자금 수수 통로라는 역사적 오명이 많다. 특히 김대중 정부 이후 전경련은 지속적으로 수난을 겪어왔다. 1999년 대우 사태로 김우중 전 회장이 물러난 뒤 전경련은 재벌 오너들의 회장 직 고사로 대리인 체제를 유지했다.

최근에는 회장을 뽑는 데도 장기간 진통을 겪었다. 일각에서는 기존의 만장일치 추대 형식이라는 불합리하고 불투명한 선임 절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회비 분담이 가장 많은 4대 재벌 그룹의 오너가 회장 직을 서로 맡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표피적인 진단을 내린다. 하지만 관치경제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민간 주도의 글로벌시장 경쟁시대가 도래한 현 시점에서 전경련의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첫째, 외환위기 이후 경제 양극화가 극심한데 전경련의 역할은 오로지 재벌 총수 일가들의 행태를 옹호하는 역할을 자임해 왔다. 때로는 불법·탈법적 상속 및 증여 행위에 대해 방어 논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제 개별 기업집단의 규모와 경쟁력에 큰 격차가 있는 현실에서 전경련이 모든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는 불가능하다.

둘째, 전경련 회비의 절반을 훨씬 넘는 금액을 4대 재벌 그룹이 전담하는 체제 아래에서는 회원사 전체의 이익을 위한 공정한 정책 수립이 불가능하다. 이런 비경제적 원리가 작동하는 구조 하에서는 전경련의 존립 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셋째, 재벌 그룹들은 연구소나 싱크탱크를 모두 가지고 있다. 전경련이 제공하는 정책 내용이 이들이 제공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보장이 없다. 현실적으로 4대 재벌 그룹의 연구소들이 발간하는 보고서는 전경련이 제공하는 연구물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지 오래다. 전경련이 겪는 현재의 내부 갈등은 일시적이기보다는 구조적이다. 따라서 회장을 선임하는 문제와 별도로 전경련의 기능 재편과 관련한 근본적인 개혁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전경련의 역할 재평가를 통해 대한상공회의소나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통합을 고려하는 것이 한 가지 대안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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