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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악화되자 “더이상 밀릴 수 없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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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08면

15일 의료법 개정안 공청회가 열린 서울 불광동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앞에서 의사들이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의사들이 결국 문을 걸어 닫았다. 청진기 대신 피켓을 잡았고 의사가운 대신 비옷을 입고 “의료법 개정안 철회”를 외쳤다. 지난 21일 의사ㆍ한의사ㆍ치과의사 5 만여 명이 정부 과천청사 앞에 모였다. 2000년 2월 여의도공원에서도 4만 명가량의 의사들이 모여 “의약분업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이번 집회는 겉모습은 7년 전과 비슷하지만 내용은 많이 다르다. 우선 앙숙인 의사와 한의사가 손을 잡았고 치과의사가 처음으로 거리로 나섰다. 간호사ㆍ시민단체ㆍ수지침사 등의 관련 단체들이 어떤 조항에서는 대립하다가도 다른 조항에서는 손을 잡는다. 의료법 개정안이 뭐기에 이런 동상이몽(同牀異夢)을 만들었을까. 

의료법개정안 두고 의사들 왜 이러나

70년대 法 손대려다 벌집 건드려
의료법은 약사법과 함께 의료의 틀을 정하는 핵심 법률이다. 의료행위의 정의에서부터 의료인의 자격ㆍ면허ㆍ업무, 조산사ㆍ간호사, 의료기관 등 의료와 관련한 모든 부분을 담고 있다. 93년 약사법 조항 하나를 잘못 건드렸다가 한약분쟁이 일어났듯이 의료법도 그런 위험성 때문에 73년 이후 28차례 땜질만 해왔던 것이다.

의료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는데 30년 전의 법을 적용하다 보니 병ㆍ의원 이름에 외국어를 쓰지 못하는 등 현실에 맞지 않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문가ㆍ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전면 개정을 요구했고 머리를 맞댔으나 결과는 벌집을 건드린 꼴이 됐다. 

집단 휴진 명분 약해
의료계는 ▷임상진료지침 제정 ▷유사의료행위 양성화 ▷간호 진단 도입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 신설 ▷환자 유인 행위 확대 등의 조항에 반대한다. 또 의료행위에 투약(投藥)을 포함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들의 주장이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다. 가령 임상진료지침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의사들이 스스로 만들도록 멍석을 깔아주면 되는데 법에 담으려다 보니 ‘의료를 통제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외법률사무소 현두륜 변호사는 “유사의료행위 합법화도 장시간의 별도 논의가 필요한, 폭발력이 매우 큰 사안인데도 그런 절차 없이 안이하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신감도 사태 악화에 한몫했다. 복지부의 한 간부는 “ 유 장관이 해묵은 난제였던 장애인 LPG 지원 폐지, 의료급여 개혁 등을 비교적 잘 처리하면서 의료법도 쉽게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런 것들이 집단휴진을 할 정도의 사안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2000년 의약분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처방전 대리수령 허용, 의사의 설명 의무 신설, 비보험 진료 할인 허용 및 가격 게시 의무화 등 환자의 권리 향상에 도움이 되는 조항이 많이 들어갔다. 또 의료법인 합병절차 신설, 병원 부대사업 확대 등은 의료산업 경쟁력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연세대 정형선 교수는 “의사들의 주장을 뜯어보면 휴진을 하고 시위를 할 만한 조항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기 잡는 데 대포를 쏠 이유가 없지 않으냐”는 유 장관의 표현이 나온 것 같다.

진료비 내리고 의사넘쳐 경영악화
의사들의 반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다름 아닌 위기의식이다. 국민의정부가 의약분업을 시행하면서 의사들을 몰아붙였고 그 흐름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 때 의사들은 ‘집단적인 힘’을 과시해 1년여 만에 수가(酬價ㆍ진료행위의 가격)를 50%가량 올렸다. 이 덕분에 2001년까지 수입이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정부의 건보 재정 관리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수가 인하, 차등수가제 시행 등으로 의원당 수익이 2002~2003년 마이너스 성장했다. 2005년 이후 다소 회복하고 있으나 식대 보험 적용, 감기환자 부담금 인상 추진 등 수입을 악화시키는 제도가 줄을 잇고 있다. 매년 3300여 명의 새내기 의사가 쏟아져 나오는 점도 경영을 어렵게 한다.

의협신문이 최근 의사 1037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55%가 월 매출이 700만원이 안 됐다. 의사협회 오윤수 홍보실장은 “매출에서 임대료ㆍ인건비 등을 제하면 실제 수입은 얼마 안 된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에 대한 이념적인 반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의협신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71%가 보수이며 73%가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의 의사에 대한 규제가 계속되고 의사 영역이 침해될 것을 우려해 더 이상 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복지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진료 행위의 양에 대해서는 별로 규제가 없는 편이며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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