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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에 꽃 핀다, 사람 피어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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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03면

“춥건 덥건 약속이니까 떠나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가 우렁차다. 이대로 춘삼월인가 싶었더니 웬걸. 그냥 가기 아쉬워 뒷걸음질친 동장군이 봄 뒷덜미를 문 경칩 날 아침이다. 탈것을 일절 물리치고 걸어서만 다니는 원공 스님이 다시 길 떠났다. 바람 차고 눈 날리는 길 위에 스님은 바랑 대신 침낭과 간이 천막을 메고 나섰다. 일 년 내 한반도 구석구석을 밟는 긴 여정이자 만행(萬行)이다. ‘걷는 스님’으로 산 삼십 년을 돌아보는 도량으로야 길이 제격이다. 예순셋 스님 나이를 까맣게 잊는다. 손을 모은다.

꽃은 허리를 굽힐 줄 아는 이에게만 보인다. 나는 별것 아니다, 하면 너와 나 사이의 산이 무너지는 곳에서 길은 열리고 꽃은 핀다. 아래로 아래로 자꾸 내려가면 도는 스스로 높아진다.

일러스트 이강훈

스님 냄새

십 년 전 서울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無門關)에 들어섰을 때, 스님은 절을 받지 않았다. “나를 만나려면 천 배 하라” 한 여느 스님과 달리 낯선 손님을 일어나 두 손 모으고 맞았다. 절은 죽은 사람에게나 하는 것, 젊은것이 늙은 어른께 절 받는 건 중밖에 없다며 뼈 있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절에 가면 주지라고 있지. 내가 보기엔 ‘받지’만 있어. 중이 신도한테 받기만 하면서 왜 ‘주지’라 하나. 절에서 중 노릇 하는 것이 똑 산적 짓일세. 요새는 어찌 된 게 머리 깎고 절집 가면 그저 바로 중이야. 스님 냄새가 없어.”

스님은 ‘쓰레기 캐는 부대’ 대장으로도 이름났다. 지난해 말, 십이 년 걸려 도봉산에 묻혀 있던 쓰레기 걷어내는 일을 끝냈다. 수녀도 목사도 정녀도 보살도, 스님 앞에 오면 다 쓰레기 캐는 중생이다. “어서 오게” 손을 맞고 나면 “자네 쥐뿔이 무슨 뜻인지 아나” 같은 재미난 익은말로 좌중의 배꼽을 뽑은 뒤 “자, 쓰레기 캐러 가자” 자루 지워 나선다. 스님은 허리 굽혀 쓰레기 줍는 일을 ‘하심(下心) 키우기’라 했다. ‘나는 별것 아니다’ 하면 굳이 나를 내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옷 두 벌

스님이 사는 방은 텅 비어 있다. 방석 하나 없다. 전기도 안 쓴다. 우리나라에서 한 방울도 안 나는 기름은 안 쓰겠다는 뜻이다. “전구 켜면 달이 빛을 잃어” 한마디로 불편을 털어버린다. 옷도 벗고 입는 단 두 벌이다. 여벌이 있어 빨래니 뭐니 하면 거기서 나는 비누 거품도 쓰레기다. “세상에 포장지가 너무 많아. 사람이 왔다 가면 남는 건 쓰레기뿐일세”라며 스님은 말씀하셨다. “천국이니 내세니 찾는데 언제 딴 세상 가서 또 무얼 하겠나.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바깥에서도 새는 법. 여기서 문제를 해결해야지.”

강원도 어느 산골에 접어들었을 원공 스님을 떠올린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며 성큼성큼 걷는 스님 발걸음마다 꽃이 피리라.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 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안도현 시인은 봄이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다고 노래한다.

개문류하(開門流下)

하심을 강조한 또 한 스승이 장일순 선생(1928~94)이다. 스스로 “나는 좁쌀 한 알이다”라는 뜻으로 일속자(一粟子)라는 호를 썼다. 하필이면 그렇게 가벼운 호를 쓰시느냐고 여쭸더니 특유의 함박웃음으로 대답하셨다. “나도 인간이라 누가 뭐라 추어주면 어깨가 으쓱할 때가 있잖아. 그럴 때 내 마음을 지그시 눌러주는 화두 같은 거야. 세상에 제일 하잘것없는 게 좁쌀 아닌가. ‘내가 조 한 알이다’ 하면서 내 마음을 추스르는 주문일세.”

일속자는 고향 원주에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숨은 어른’의 길을 간 만인의 스승이었다.

그런 장일순이 개문류하(開門流下)를 ‘밑바닥 놈들과 어울려야 개인도 집단도 오류가 없다’고 풀었다.

장일순이 개문류하를 생활 속에서 얼마나 잘 실천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 하나가 있다. 어느 날 딸 혼수 비용을 기차 안에서 소매치기 당한 아낙네가 장일순을 찾아와 눈물로 호소했다. 얘기를 듣고 원주역 앞 노점상 틈에 뒤섞여 사나흘 정보를 얻은 장일순은 돈을 훔친 자를 찾은 뒤 그를 달래 돈을 받아내 아낙에게 돌려줬다. 그러곤 가끔 역에 나가 그 소매치기에게 밥과 술을 사며 말했다는 것이다. “미안하네, 내가 자네 영업을 방해했어. 사과하는 뜻으로 사는 밥과 술이니 한잔 받으시고 용서하시게.”

‘밑으로 기어라’ 말씀 끝은 이랬다. “할 수만 있으면 아래로 아래로 자꾸 내려가야 해. 한순간이라도 하심을 놓치면 안 돼.”

문을 활짝 열고 아래로 흘러가는 길이 봄이다. 거기서 꽃이 핀다. 함민복 시인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다.

봄은 떠나기 좋은 철이다. 길 위에 나서 삶을 새롭게 만드는 나 너 사이에 꽃핀다. 꽃이 핀다. 사람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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