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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 같은 와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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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29면

일반적으로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라랑드’와 남성적인 톤이 강한 ‘바롱’은 다른 느낌을 주는 와인이다. ‘수퍼 세컨드(Super Second) 와인’ 중에서도 포이약 지역에서 최고로 꼽히는 ‘라랑드’와 ‘바롱’, 그리고 ‘린치바쥐’는 항상 가장 상위권의 평가를 받는 와인들이다. 등급은 1등급이 아니지만 와인의 품질만큼은 거의 1등급에 가까운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하는 와인을 ‘수퍼 세컨드 와인’이라고 부른다.
‘바롱’의 와인들 중 추천할 만한 빈티지로는 1989·90<·95<·96<·98·2000<·2001·2003 등이 있다.

와인 시음기-샤토 피숑 롱그빌 바롱 1996

마침 며칠 전에 ‘바롱’의 1996 빈티지를 시음(試飮)했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딥 루비 컬러’의 강한 색이 눈을 사로잡는다. 그러면서도 어린 티가 꽤 난다. 블랙베리ㆍ블루베리ㆍ카시스 등의 농축된 과일 캐릭터가 진하게 피어오른다. 남성적이라는 전통적 평가 때문일까. 강(强)하다, 진하다 같은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니.

뒤를 이어서 걸쭉하면서도 강렬한 에스프레소 향기와 오크 터치 삼나무 등의 나무숲에 들어선 듯한 느낌의 향들이 피어오른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니 제법 임팩트가 느껴지는 두툼한 타닌이 인상적이다.

적절한 애시디티(신 맛)는 와인의 장기 숙성 가능성을 보여준다. 모나지 않은 둥근 밸런스(조화감)는 이 와인이 얼마나 뛰어난지 말해준다.

피니시가 조금 짧은 게 흠이지만 분명 뛰어난 빈티지의 좋은 와인임에 틀림없다.

이 와인을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누구와 비슷할까. 나는 빈틈없이 깔끔하게 옷을 잘 차려입은 영국 스파이 ‘007’의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이 떠올랐다. 칼 같은 옷매무새, 깔끔한 매너, 긴장과 탄력이 팽팽하게 살아있으면서도 매력과 인간미가 느슨하게 어우러진 중후한 40대 남성. 그런 단정한 느낌의 와인이다.

‘007’ 시리즈를 종횡무진 누비며 뭇 여성들을 유혹하던 피어스 브로스넌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와인을 마시면 더 감칠맛이 나지 않을까. 포도주는 분위기로 마신다는 말이 이럴 때만큼은 맞는 것 같다.

이 좋은 와인을 식탁에 올렸는데 그냥 아무 음식과 마시기는 아깝다. 두툼한 스테이크나 양고기와 함께라면 금상첨화다.

적정 시음 시기는 2010년에서 2025년까지. 최상의 맛을 위해 몇 년쯤 인내하는 것도 좋겠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지금 당장 따야겠다면 최소한 디캔터(와인을 옮겨담아 공기와 접촉하게 해 포도주 맛을 더 좋게 하는 용기)에서 2시간30분 이상 놓아두는 몸풀기(브리딩)를 한 뒤 즐긴다. 연간 평균 2만 케이스(Case)가 생산되며 세컨드 와인으로는 ‘레 투렐 드 롱그빌(Les Tourelles de Longueville)’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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