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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의 참맛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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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25면

“좋은 고깃집을 발견했어요.”

김태경ㆍ정한진의 음식수다

얼마 전 경기도 파주에 갔다가 오랜만에 괜찮은 식당을 만났다. 옥호는 ‘파주신선한우촌(031-957-5567)’. 이 집의 한우 모둠구이는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도 여러 부위의 고기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20년간 쇠고기를 취급했던 주인은 최근 파주 한우농가와 손잡고 파주한우 고유브랜드로 가게를 열었다.

“우리는 쇠고기를 160여 가지로 분류해서 먹는다고 해요.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에야 쇠고기를 먹기 시작한 일본의 경우에는 15가지뿐이라니, 우리가 10배 더 섬세하게 먹는 셈이죠. 육식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도 35가지 정도라니 우리의 미각이 놀라울 정도로 발달되었다는 이야기일까요?”

“사실 우리는 육식의 전통이 없다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권에서는 일반적으로 육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했지. 게다가 예전에는 쇠고기를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았고. 미각이 발달되었다기보다는 귀한 쇠고기를 남김없이 먹다 보니 그렇게 세분하게 된 것이 아닐까. 뼈까지 푹푹 고아서 우려먹고 관절의 도가니까지 발라먹을 정도로 쇠고기는 귀하고 접하기도 어려웠으니까.”

쇠가죽 안에 붙어 있는 질긴 고기를 수구레, 소의 목덜미 위쪽에 붙어 있는 아주 질긴 고기를 도래목정, 소의 창자 끝에 달린 기름기가 많은 부분을 곤자소니라고 부른다. 이처럼 먹기에 알맞지 않은 부위들까지 세세하게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무조건 먹어치웠다기보다는 먹으면서도 고기의 질과 맛을 기억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졸업식 축하 음식은 자장면 아니면 불고기였지요. 물론 불고기를 먹는다는 것도 사건이었고요. 양념갈비를 밖에 나가 먹는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었죠. 생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1990년대 강남에 대형 고깃집들이 들어서면서 생고기를 먹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 물론 그런 고깃집을 드나든다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 성공의 상징이었지만 말이야. 그래서인지 그 비싼 꽃등심만 찾는 이들이 너무 많아.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기 맛을 즐기기에는 꽃등심이 좋지만, 꼭 ‘한우 1등급으로 눈꽃 듬뿍 핀 등심’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고기 몇 점이야 감탄을 낳게 하지만, 지방이 많은 꽃등심은 입 안에 기름이 많이 돌게 해 금방 질리게 하죠.”

“그렇지. 살살 녹는 맛도 좋지만 고기 맛은 씹는 맛이지.”

“씹으면서 고소한 육즙이 입 안 가득 고이게 하는 고기가 최고 같아요. 고깃집 주인이 이 부위 저 부위를 권하는데, ‘이게 어떤 부위인데 이렇게 맛이 있어요?’라고 묻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뜻밖에 사태에서 잘라낸 고기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일반적으로 구워 먹을 수 없는 부위니까요.”

“정말 뜻밖인데. 쇠고기의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가 고유한 맛을 갖고 있으니, 그 맛을 알아간다는 것이 쇠고기의 참맛을 즐기는 셈이겠군.”

눈으로 보기에도 최상등급의 고기가 실제 구워보면 맛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깃집 주인은 등급 외에 맛에 대해서도 표준화된 방식으로 표시해주어야 쇠고기를 제대로 소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비싼 돈을 주지 않고도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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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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