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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야기] 우울증 치료제 '푸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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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미국의 제약사 릴리가 이 약을 처음 시판했을 때(한국은 1989년) 대다수 미국 의료계와 언론은 ‘지긋지긋한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하는 해피 메이커(행복약)’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영화 배우 톰 크루즈가 신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된 신흥종교 사이언톨로지는 이 약을 반대했다. 정신질환은 약에 의존하지 말고 자기 수양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이들의 교리와 어긋났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년. 그동안 전세계 5400만 명의 환자에게 처방돼 명실상부한 우울증 치료제의 ‘블록버스터’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특허권이 만료돼 카피 약이 다수 나왔고, 이 약의 약점을 보완한 신약이 여럿 등장했지만 푸로작의 인기와 유명세는 여전하다.

우울증 치료제는 흔히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SSRI)ㆍ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SNRI)ㆍ삼환계 우울증 치료제(TCA)로 나뉜다. 푸로작은 이 중 SSRI에 속하며 SSRI 계열 약 가운데 첫 번째 약이다.

푸로작이 등장하기 전엔 TCA 계열의 약이 주로 쓰였는데 졸림ㆍ입마름ㆍ변비 유발ㆍ손 떨림ㆍ체중 증가 등 부작용이 문제였다. 이런 부작용을 대폭 줄여 준다는 게 푸로작이 대중의 관심을 모았던 이유였다.

치료 효과 면에서도 꽤 높은 평점을 받았다. 한양대병원 정신과 김석현 교수는 “이 약을 2∼3개월(최소 4주) 이상 꾸준히 복용한 우울증 환자의 50%에선 증상이 거의 완벽하게 사라진다”며 “30%에선 부분적인 치료효과(일부 증상 잔존)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에선 이렇다 할 효과가 없다. 이들은 다른 우울증 치료제를 함께 복용하거나 약을 바꾸는 것이 방법이다.

요즘엔 우울증 외에 불안 장애, 공황 장애, 강박 장애, 생리전 불쾌 장애 환자에게도 푸로작이 처방된다.

스트레스로 인해 식욕이 마구 당기는 신경성 식욕 과항진증에도 효과가 있다. 비만클리닉에서 이 약을 비만 치료제로 처방하는 것은 이래서다. 우울증과 비만(우울증이 폭식을 부를 수 있음)을 함께 갖고 있는 환자라면 푸로작으로 1석2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약을 비만 치료제로 오해해 남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푸로작 등 SSRI 계열의 우울증 치료제를 청소년 환자가 복용할 때는 상당한 주의가 요망된다. 복용 초기(1달 이내)에 자살 위험이 두세 배(약을 복용하지 않는 청소년 대비) 높아질 수 있어서다.

서울아산병원 신경정신과 홍진표 교수는 “청소년 자살과 푸로작 등 SSRI 계열 약의 인과관계는 아직 명확하게 증명되지는 않았다”며 “약을 복용하면 청소년의 충동 성향이 더 높아져 이것이 자살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그래서인지 SSRI 계열 약엔 “소아ㆍ청소년의 자살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라벨이 붙어 있다.
  이 약의 부작용은 메스꺼움ㆍ구토감ㆍ더부룩함ㆍ입맛 저하ㆍ변비ㆍ설사ㆍ불면ㆍ성욕 감퇴 등이다. 다행히도 이런 부작용은 약 복용을 중단하면 사라진다.

이 약은 또 카페인처럼 각성 효과가 있다. 밤에 먹으면 잠이 잘 오지 않고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따라서 불면증 환자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아침에 한 알 복용(식사와는 무관)하라고 권하는 것은 이래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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