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관료·승려 관리하는 심판자/유혈파국 막은 태국 왕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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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초법적 최고권위… 국민 절대복종/왕추인 못받은 쿠데타 7번 실패
유혈시위사태를 하룻밤사이에 진정시킨 푸미폰태국국왕의 권위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처럼 태국에서 국왕에 대한 국민의 존경과 복종은 거의 절대적이다.
태국의 왕가가 행사하는 영향력과 권위는 정치권과 군부 등 모든 집권세력을 초월하는 것이다.
국왕이 세속의 잡사를 일일이 좌우하지는 않지만 태국정치의 특징인 군·관료·승려 등 지배세력간의 균형을 공정하고 권위있게 관리하는 심판자로서 기능은 성역이상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시위사태의 경우 푸미폰국왕의 후계자들인 왕세자와 공주가 모두 외국방문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이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시린돈공주가 파리에서 위성중계된 TV방송을 통해 사태진정을 호소한 것이 즉각 큰 영향력을 미쳐 수친다총리의 기세를 단숨에 꺾어버리는 효과를 발휘했다.
태국형 입헌군주제는 영국이나 일본과 달리 국왕이 상징적 지위이상의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태국형 입헌군주제가 뿌리내린 것은 32년 절대왕정이 무너질때 사회 제세력간의 타협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 32년 이후 군쿠데타 17차례 가운데 일곱번이 실패한 것도 왕의 추인을 받지 못해서였다.
76년 군부 우파세력이 타마사트대 학생시위를 유혈진압,46명이 숨지자 푸미폰국왕이 나서 군부에 자제를 촉구,수습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가의 기틀이 흔들릴 정도의 위기상황이 되면 국왕이 항상 중재자로 나서 사태를 진정시켰다.
국왕이 나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태국이라는 나라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국민적 합의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푸미폰국왕은 이번 시위가 극단으로 치닫자 20일 파리를 방문중인 시린돈공주로 하여금 폭력사태를 우려하는 왕가의 입장을 국민에게 전달하도록 해 수친다총리에 대해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방콕 전역에서는 수친다정권에 반대하는 역쿠데타설이 나돌고 실제 그런 움직임도 있자 수친다총리가 국왕의 심중을 깨달아 굴복하게 된 것이다.
푸미폰국왕은 이어 프렘전총리 등의 의견을 들어 이번 사태의 두 주역인 수친다총리와 잠롱을 직접 불러 꾸짖었고 두사람이 두말없이 국왕의 뜻을 수용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TV로 방송되면서 시위와 총격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국왕이 국가의 기틀을 지키는 태국의 독특한 입헌군주제가 또한번 제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방콕=전택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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