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새우가 고래등을 터트리는 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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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위키노믹스
돈 탭스코트 외 지음, 윤미나 옮김,
21세기북스, 480쪽, 1만8000원

토론토에 소재한 작은 금광회사 골드코프. 십여년전 이 회사는 망해가기 직전이었다. 노다지를 찾지 않는 한 온타리오의 광산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절망에 빠졌던 젊은 펀드매니저 출신 롭 맥이웬 사장은 1999년, 우연히 리눅스에 관해 알게 됐다. 리누스 토발즈와 자진해서 몰려든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이뤄낸 놀라운 성공신화. 인터넷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 이야기. 그 모든 것은 토발즈가 세상에 프로그램 코드를 공개하면서 이뤄졌다. 맥이웬 사장은 리눅스를 흉내 내기로 결심했다.

2000년 3월, 그는 '골드코프 챌런지' 콘테스트를 열었다. 1948년부터 회사의 탐사 과정을 모두 공개했다. 목표는 금 170t을 찾아내는 것. 57만5000달러의 상금을 내걸었다. 전 세계 지질학자들이 몰려들었다. 수학자, 컨설턴트, 대학원생은 물론 군 장교까지 있었다. 참가자들은 회사가 반세기를 헤매도 찾지 못했던 110곳의 금맥 후보지를 찾아냈다. 220t의 금이 새로 발견됐다. 골드코프의 '오픈 소스' 전략은 성공했고, 회사는 살아났다.

위키노믹스(wikinomics)는 인터넷 이용자들이 만든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와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믹스'를 합성한 말이다. 위키는 하와이 말로 '빠르다'는 뜻이다. 위키피디아는 브리태니커 사전을 따돌리고 업계의 패자로 올라섰다.

위키피디아의 성공 비결은 전무후무한 생산방식이다. 이 백과사전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스스로 묻고 답하고 다듬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200여 개의 언어로 작성된 400만 개가 넘는 항목이 들어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에 관하여, 영어로 작성된 항목들이 매일 평균 2000개 새로 등록된다. 일년이면 73만 개의 새 항목이 생기는 셈이다. 정확도도 기존 브리태니커 사전에 못지 않다. 게다가 무료다. 반면 브리태니커는 귀찮은 구독절차를 거쳐 한 달에 11.95달러를 결제해야 한다. 설립자 지미 웨일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5년 안에 자취를 감출 것"이라 장담한다.

이처럼 협업을 촉진한 기업들이 문을 걸어잠근 기업을 물리친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구글 맵이 맵퀘스트를, 블로거는 CNN을, 에피니언은 컨슈머리포츠를, 마이스페이스는 프렌스터를 제쳤다.

저자인 돈 탭스코트는 웹을 통해 뭉쳐진 개인 지성의 합을 '집단 지성'이라고 부른다. 수백만 또는 수십억 사용자의 지식을 조직화해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바로 대규모 협업을 통해 새로운 웹은 지구 전체의 거대한 두뇌로 변모 중이란 것이다. 이 협업은 과거 어떤 생산양식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위키노믹스의 핵심 메시지다.

밝은 활자와 빼곡한 지면, 풍부한 사례와 빠른 전개, 공들인 번역은 독자의 무릎을 치게 한다. 구세대에겐 어려울만한 용어와 단어, 낯선 개념들이 난무하는 게 흠이라면 흠. 공부의 희열과 세상 이치를 깨우치는 쾌감을 함께 전해주는 책이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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