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푸는 역시 <17> '국민학교'와 '초등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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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세기말 우리 나라에 처음 등장한 근대적 초등교육기관의 명칭은 '소학교' 또는 '보통학교'였다. 일본과의 강제 병합 이후에는 한국인이 다니는 학교는 보통학교, 일본인이 다니는 학교는 소학교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1926년부터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로 통일되었다.

1941년 제국주의 일본은 심상소학교라는 명칭을 '국민학교'로 바꾸었다. 명칭을 바꾼 이유에 대해 '국민학교령'제1조에서는 국민학교의 목적을 "황국(皇國)의 도(道)에 따라 보통교육을 실시하고 국민의 연성(練成)을 행함"이라고 규정했다.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에서는 국민의 연성 외에 내선일체(內鮮一體)의 구현에 힘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즉 국민학교 명칭의 도입에 따라 초등교육의 목적이 천황에게 충성하는 일본 국민의 양성에 있음이 분명해졌다. 아울러 한국인에게 국민학교란 명칭의 사용은 민족적 정체성의 말살과 침략전쟁으로의 동원을 의미했다. 바로 이것이 태평양전쟁 도발을 앞두고 일제가 국민학교 명칭을 도입한 이유였다.

이름을 바꾸는 것과 함께 교육내용에서도 "보편적인 도덕이 아니라 일본의 도덕을 가르친다"는 이른바 '국민과(國民科)'가 강조되었다. 수신(修身.일본 도덕), 국어(일본어), 국사(일본사), 지리(일본 지리)로 구성된 '국민과'에 대한 특별한 강조가 진행됐다. 이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의 첫 단계에서부터 노골적으로 국가주의적 색채를 강화한 것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잔재가 청산되어 왔지만,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오랫동안 큰 논란 없이 사용되었다. 그것이 단지 명칭의 사용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명칭에 담긴 제국주의적 교육의 성격에 대한 반성도 유보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패전 직후 일본이 학교 명칭을 '국민학교'에서 다시 '소학교'로 바꾼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염복규(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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