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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재난현장서 돌아온 한비야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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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계속의 한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글로벌 시티즌십입니다."

오지 탐험가에서 난민구호 전문가로 변신한 한비야(49.사진) 월드비전한국 긴급구호팀장. 25일 만난 그의 목소리는 높았다. 대홍수로 고난을 겪는 볼리비아를 다녀온 직후다. 그가 생각하는 글로벌 시티즌십이란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환경보전.난민구호 등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 그는 "머릿속에 세계지도를 품고 우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더불어 살기'를 실천할 때 세계인의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받은 나라다. 한국전쟁 등 어려울 때 국제적 도움을 받은 만큼 보은 차원에서라도 지구촌 재난 구호에 동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믿음은 볼리비아 재난 현장을 본 뒤 더욱 굳어졌단다.

"남한 땅의 5~6배에 달하는 땅이 두 달 이상 물에 잠겼어요. 지구 온난화로 이상 폭우가 쏟아진 탓이랍니다. 동부 저지대의 4개 강이 비에 불어나 합류했는데 강폭이 75㎞나 되더라고요. 40여 만명이 피해를 입었는데 9만여 명은 아직 난민촌 신세랍니다. 식량은 물론 마실 물이 없어 죽은 동물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 강물을 마십니다. 당연히 설사와 뎅기열병 등에 시달리죠. 물이 빠진 뒤에도 살아갈 걱정이 태산입니다."

말이 속사포 같다. 직접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다는 표정이다.

"그런데도 국제적 도움은 미미합니다. 쓰나미처럼 일시에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다가 석유도 없고, 지정학적 이해가 크게 걸린 나라도 아니어서 CNN, BBC서도 외면하는 탓이죠."

이럴 때일수록 한국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그는 말했다. 진정한 세계시민의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아서란다.

"우리는 더우면 에어컨을 틀죠. 삼림을 마구 개발해 얻는 종이 등 자원을 마구 쓰잖아요. 이 모두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랍니다."

볼리비아의 장마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온도의 이상 현상인 엘니뇨와 라니냐 현상 때문에 발생한 것이란 설명에 살짝 미안해진다.

"100원짜리 정수약 한 알이면 다섯 식구가 하루 마실 물을 정수할 수 있어요. 월드비전은 5월까지 1억원을 모금해 정수약과 정수시스템을 볼리비아에 지원할 예정입니다. 시민들이 참여해 이 꿈을 이룬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볼리비아 기금을 보낼 계좌(우리은행 143-135794-13-008 예금주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와 문의전화(02-784-2004) 홍보를 잊지 않았다. 60세까지 재난 구호 현장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그는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등 베스트셀러의 작가다. 그런데 곧 청소년 대상의'세계시민학교'를 운영할 계획이라니 교육자로도 변신하는 셈이다.

"생각만 하다가 뜻밖의 광고출연으로 1억원을 받게 되어 전액 출연했죠. 5월부터는 한번에 30~50명의 학생들을 1박2일 일정으로 교육시키기 위해 프로그램 개발 등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성숙한 세계시민을 양성할 희망에 부푼 그의 얼굴은 꿈 많은 소녀의 얼굴이었다.

글=김성희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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