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 한나라 대결' 사라지자 독자 노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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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던 충청권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전 서을 4.25 보궐선거에서 충남지사를 지낸 국민중심당의 심대평 대표가 한나라당의 이재선 후보에게 압승을 거두자 정치권의 시선이 온통 충청권으로 쏠리고 있다.

'충청의 힘'이 2007년 대선 구도를 예측불허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충청권이 행사한 캐스팅보트의 힘은 결정적이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민련 김종필(JP) 총재를 붙들었기에 집권할 수 있었다.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약으로 뭉텅이 표를 끌어 모을 수 있었다.

여기에 노 대통령이 2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의 리더십을 보임으로써 그의 실정 문제가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는 이른바 '무노(無盧) 선거'가 겹치면서 충청의 독자적 힘이 부각됐다.

노 대통령이 12월 대선에서도 과녁이 되지 않는 무노 선거가 이어지면 충청의 캐스팅보트의 힘이 강화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과녁이 없어 반노 심리가 줄어들게 되면 충청 표심이 한나라당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전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선거운동 기간 내내 "연말 정권교체를 위해선 한나라당 후보를 찍어 달라"고 호소했지만 유권자들에게 먹히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충청의 독자적인 힘은 지방의원 선거 결과에서도 묻어난다. 국민중심당은 대전지역 두 곳의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당선자를 냈다.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기초의원 선거는 열린우리당도 후보를 내 한나라당과 3파전 양상이었는데도 국민중심당이 승리했다. 이른바 범여권의 '연합공천 효과'와 무관하다.

국민중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26일 "심대평 전 지사가 범여권의 연합공천 때문에 이겼다는 것은 말이 안 되며 대선의 향배를 충청권이 결정짓자는 '충청 결정론'에 유권자들이 호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 대표도 당선 소감 때 "범여권 통합에 관심 없다"고 해 독자노선을 천명했다. 국민중심당 관계자는 "심 대표 스스로 대선에 나서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몸값을 올리기 위한 발언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에 내려가 현지 민심을 살폈던 한나라당 정진섭 의원은 "시민들 사이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고, 화제는 오로지 '국민중심당을 한번 밀어줘야 된다'는 것뿐이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한나라당에선 97년에 이어 2002년 대선 때도 JP를 끌어안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래서 이번엔 일찌감치 충청권 변수를 잠재우기 위해 당이 적극적으로 심 전 지사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범여권으로부터도 강력한 러브콜을 받는 심 전 지사가 정치적 연대 대상을 일찌감치 결정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 같다. 가급적 결단의 시기를 늦추면서 한나라당과 범여권 사이에서 주가를 부풀리고 캐스팅보트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김정하 기자

◆ 무노(無盧) 선거=노무현 대통령이 당적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치른 선거. 노 대통령이 2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함에 따라 4.25 재.보선은 첫 '무노 선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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