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할리우드 바람 거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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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매년 이맘때면 열리는 프랑스 칸 영화제가 올해로 45회 째를 맞는 가운데 칸 해변에 부는 할리우드 바람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거센 것 같다.
오는 18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영화제의 공식경쟁 부문 후보작 21편중 3분의1인 7편이 미국영화로 할리우드의 위세는 가위 압도적이다. 전야제가 있었던 지난 7일 공식 시사회의 첫 개막 테이프를 끊은 작품도 미국영화『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이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되는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는 이 정통 할리우드 영화는 칸영화제 출품과 동시에 프랑스 전국에 개봉돼 폭발적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숱한 화제와 파문 속에 지난달 미국에서 개봉돼 연속 3주째 흥행 랭킹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영화는 섹스·폭력을 바탕에 깔고 여기에 서스펜스·공포 등 추리적 요소를 가미한 일종의 수사·스릴러물.
매년 칸 영화제 때만 되면 특집까지 발행할 정도로 영화에 열성을 보이는 프랑스 신문·잡지들은 이 섹스·폭력영화를 소개하는 기사로 온통 넘치고 있고 연출한 폴 베뢰벤 감독(54), 주연을 맡은 미국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샤론 스톤은 쇄도하는 프랑스 언론의 인터뷰공세로 몸살을 앓고 있다.
『로보캅』(87년), 『제4의 사나이』(83년), 『토탈 리콜』(90년)등 폭력·공상영화로 유명해진 네덜란드 출신의 할리우드 연출가 베뢰벤 감독이 만든 이 영화의 기본 스토리는 이렇다.
한 아마추어 여가수가 정사도중 전신 서른 한군데가 얼음 송곳에 찔려 살해되는 참혹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추적하던 형사 닉(마이클 더글러스 분)은 한 미모의 여류소설가(샤론 스톤 분)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러나 양성 연애자인그녀의 유혹과 미모에 끌려 끝없는 육욕을 불태우면서도 쾌락의 절정에 이르면 항상 발작하는 그녀의 살인본능 때문에 몸서리친다는 그렇고 그런 내용
레즈비언과 호모가 등장하고 노골적 정사장면과 처참한 폭력이 난무하는 이 영화는 동성연애자 단체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는 등 개봉 전부터 미국 내에서 심각한 논란을 빚었고 결국 일부 장면이 검열과정에서 삭제된 채 미국에서 개봉됐다.
개봉 이틀만에 미국전역에서 1천5백만 달러의 수입을 올린 이 영화는 열띤 파문에도 불구하고 흥행 면에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일체의 가위질 없이 그대로 상영돼 이 영화는 프랑스 사람들 사이에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원초적 본능』외에도 이번 칸 영화제는『더 플레이어』(연출 로버트 앨트먼),『심플 맨』(연출 할 하틀리),『트윈스』(연출 데이비드 린치)등 모두 7편의 미국영화가 본선 심사대상에 올라 할리우드의 경연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프랑스 영화로는 모처럼 알랭 들롱이 주연을 맡은『돌아온 카사노바』(연출 에두아르 니에르망)·『파수꾼』(연출 아르노 데플르솅)등 두 편이 본선에 올랐을 뿐이다. 동구의 변화를 반영, 이번 영화제에는『혼자 사는 인생』(연출 비탈리 카네프스키) 『루나파크』(연출과벨 룽귄)등 러시아 영화 두 편이 후보작에 올라 이채를 띠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를 비롯, 일본·중국·인도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 권에서는 단 한편도 본선에 오른 작품이 없어 이번 칸 영화제는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이 판을 치는 서양 사람들만의 영화잔치가 되고 있는 느낌이다. 【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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