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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사관 종부세 안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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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한남동에 있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 직원 관사. 김태성 기자

서울 한남동 하얏트 호텔 주변 주택 단지. 주한 공관장 관저와 대사관 직원 사택들이 밀집한 곳이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직원들의 관사 중 두 채가 이곳에 있다. 지하층과 1.2층으로 구성된 건평 70여 평의 주택은 1997년 매입됐다. 등기부 등본상 건물주는 '프랑스공화국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다.

몇 집 건너 조금 더 큰 2층 집(88평)도 프랑스 대사관 소유의 관사다. 이 주택들은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 집값이 떨어지자 프랑스 측에서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담한 정원이 딸린 이들 프랑스인의 집이 서울 외교가에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 대사관이 직원 사택에 부과된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체납해 한국의 세무당국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프랑스 대사관은 프랑스 정부 명의의 대사관 직원 사택에 대해 2005년(5000만원), 2006년(1억1000만원)분 종부세 1억6000만원 중 5000만원을 내지 않았다. 나머지 1억1000만원은 이달 말까지 내야 한다. 종부세 대상 부동산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초구 반포동 등 13곳이다. 유재흥 세무사는 "종부세 1억1000만원이 부과되려면 주택의 경우 공시가격이 94억원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국세청 측은 "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고 있지만 상대가 외국 정부라는 점을 감안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국세청은 그러나 "체납의 구체적인 명세에 대해선 개인 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함구했다.

국세청은 법 절차에 따라 세액 고지→독촉→압류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반포동 빌라는 압류 상태다. 국제조약인 빈 협약상 대사관 청사와 대사 관저는 면세 대상이다.

다만 직원 사택은 그동안 양국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재산세 등 보유세를 부과하거나 조건에 따라 면제해 줬다.

한국 정부의 재외공관 부속 부동산이 해당국 정부로부터 면세 혜택을 받으면 국내에 있는 그 나라 정부 소유 부동산에 대해서도 같은 혜택을 적용한다는 얘기다.

만일 상대국 정부가 보유세를 부과하면 우리 정부도 부과하는 게 상호주의 원칙이다. 한국의 세무당국은 "종부세는 보유세의 일종으로 상호주의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공시가격으로 부동산이 6억원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 종부세 세율을 적용한다.

세금 체납으로 부동산이 압류되자 프랑스 대사관 측은 지난달 외교부에 중재를 요청했다. 대사관 측 논리는 "종부세가 프랑스에 없는 특수한 세제이고 부동산 투기 방지가 주목적이기 때문에 주거용인 직원 사택에 종부세를 부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법 적용"이라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에선 재산세만 부과하는데 한국에선 '재산세+종부세'를 부과하는 것은 상호주의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고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다른 국가들은 대부분 빌린 관사를 사용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프랑스 대사관 측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어서 재경부.국세청 등 관계 부처와 심도 있는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 부처 협의는 상호주의 적용을 어디까지 하느냐로 모아졌다. 프랑스 대사관 측도 종부세를 아예 낼 수 없다던 입장에서 최근 종부세 적용분을 일반 재산세 세율로 납부하면 어떻겠느냐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부처 간 협의에서 세율은 주권에 해당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선별적 적용이 어렵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프랑스 대사관 측은 이날 "공식 입장이 없다"고 짧게 답했다.

김창규.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 빈 협약=1969년 5월 2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채택된 조약법에 관한 국제협약. 관행으로 맺어진 국제 관습법을 성문화했다. 상호주의는 국가 평등의 원칙에 따라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일정한 대우를 했을 때 이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원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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