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척에 살던 전과23범 못 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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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제주도 서귀북초등학교에서 방송조회 도중 실종됐던 양지승양의 죽음이 알려지자 같은 반 친구인 고남혁군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내 얼굴 기억하겠나?"

"알아요. "

이 한마디에 양지승(9)양은 실종 40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제주도 서귀포시 어린이 살해 피의자 송모(49)씨는 지승양을 성추행하고 자신의 얼굴을 안다는 말에 지승양을 목졸라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귀포경찰서는 25일 수사 브리핑을 통해 "피의자는 지난달 16일 서귀포시에서 혼자 술마시고 귀가하던 중 우연히 마주친 지승양이 예뻐보여 성추행키로 하고 '글을 모르니 가르쳐 달라'며 자신이 사는 가건물로 유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승양의 시신이 실종 40일 만에 집에서 가까운 폐가전 제품 더미에서 발견돼 경찰의 부실수사를 비난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 어린이 납치 미수 전력도=송씨는 지난달 16일 지승양을 성추행한 뒤 범행이 발각될 것을 우려, 목졸라 살해했다. 송씨는 범행 다음날 오전 5시 시신을 포대와 검은 비닐로 싸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한 후 폐가전 제품 더미에 숨겼다.

송씨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서귀포시 서홍동 감귤원 범행 현장 등에서 진행된 현장검증에서 이런 범죄 장면을 태연하게 재연했다.

송씨는 상습사기 등 전과 23범으로 10년을 교도소에서 지냈다. 1992년에는 서울에서 두 살 남자 어린이를 납치하려다 부모에게 발각돼 아동약취미수 혐의로 실형을 살기도 했다.

◆ 부실수사 논란=지승양의 시신이 집 앞 70m 지점에서 발견되자 경찰의 부실수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승양 아버지(43)는 평소와 달리 8시가 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자 곧바로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당시 인천 유괴 살인사건으로 한창 민감한 때였다. 경찰은 곧바로 경찰견을 동원해 인근 지역을 뒤졌으나 시신을 찾지 못했다. 이후 두 차례 더 수색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지척에 살고 있던 송씨가 아동 유괴 미수 전력이 있었는데도 경찰은 송씨를 용의선상에 올려놓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13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전과자를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했으나 송씨는 성폭력 전과가 없어 1차 용의선상에서는 제외됐다"고 말했다.

서귀포=권호 기자

"어떻게 이웃에서…" 주민.친구들 울음바다

"지승이가 비닐 속에서 누워 얼마나 추웠을까요. 지승이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납니다. 지승아,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잠들어라."

양지승양이 다니던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북초등학교는 25일 하루 종일 울음바다였다. 학교 측은 이날 오전 9시 임시 방송조회를 열어 지승양의 소식을 학생들에게 알리고 추모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양상홍 교장은 방송을 통해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와 반대로 우리 마음은 우울하고 슬픈 아침"이라며 "지승이가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말했다.

양 교장의 방송이 나가는 동안 학생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지승양의 3학년 3반 친구들은 대부분 책상에 엎드려 흐느꼈다. 고남혁(9)군은 "지승이는 미소를 잃지 않는 착한 아이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떨어뜨렸다. 지승양이 앉았던 자리에는 국화꽃과 지승양이 쓰던 공책.필통.리코더가 쓸쓸히 놓여 있었다.

서귀북초등학교 학생들은 지승양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27일까지 3일간 검은색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기로 했다.

서귀포=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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