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 생각은…

보험산업, 안방만 지킬 때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지난해 2월 이후 1년을 넘게 끌어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됐다. 금융부문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심각한 충격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외환위기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금융시장이 사실상 완전히 개방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OECD에 가입할 때 생명보험.장기손해보험까지 국경 간 거래를 허용했다. 따라서 이번 FTA 협상에서 허용된 종목은 현재 한국의 실정법보다도 오히려 그 범위가 축소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FTA 협상 결과를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다. 보험을 비롯한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매우 취약하다. 이 시점에서 금융산업이 당장 특별한 위험요인이 없다고 안심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불안한 요소는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경 간 거래의 경우 재보험과 대부분 해상보험으로 구성된 국제관련보험에 국한돼 허용된다. 해상보험이 전체 손해보험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불과 2% 수준이다. 그러나 해상보험은 손해율이 50%를 밑돌아 손해보험사에 건실한 수입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험 부수 서비스의 경우 대면 방식으로 국경 간 거래가 허용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손해사정.위험평가.보험자문 등의 서비스 분야는 한국이 미국에 비해 경쟁력이 현저히 뒤처지는 분야다. 특히 위험평가와 보험자문은 아직까지 법적 개념조차 정의돼 있지 않다.

미국에 있는 보험 부수 서비스업체가 과연 사람까지 한국에 파견해 시장 잠식에 나설 것인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고부가가치 부문을 중심으로 국내 시장의 주도권을 고스란히 외국 업체에 내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금융서비스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국경 간 거래가 불가능하며 상품별 심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시장이 자율화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 신금융서비스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상품을 규제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개방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통해 규모의 경제성을 확보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그룹에 매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다양한 영역이 결합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 금융산업이 안전지대에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은 급속히 확대돼 왔다. 외국 자본의 진출을 환영한 것은 이들이 한국에서 고용과 부가가치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경 간 거래를 내세운 최근의 자유화는 고용과 부가가치의 창출 없이 시장만 잠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발전 유형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개방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은 경쟁력 강화뿐이라는 점이다. 이제 보험을 포함한 우리 금융산업도 안방을 지키기에 급급하지 말고 역으로 FTA라는 위기를 미국 시장 진출의 기회로 활용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창수 보험개발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