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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별 왕자의 경제이야기] (46) 라틴계 없이 미국이 돌아갈 줄 알아?

중앙일보

입력

소왕은 히스패닉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의 핵심은 뭐냐고 물었다.

"히스패닉들은 자신들도 미국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게 많고 그걸 인정해 달라는 것이지. 사회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허드렛일을 해야 하지. 쓰레기를 치워가고 길거리 청소를 하고 터진 하수도관을 고치기 위해 땅속을 기어들어가야 하거든. 그런데 잘 사는 나라에서는 그런 일을 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법. 그래서 그들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유입되게 마련이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사람의 흐름도 마찬가지지. 못사는 나라 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로 가지. 거기 가면 할 일이 있고 같은 노동을 해도 자기 나라에 비해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지. 지구촌 최대 부국 미국에서 그런 일은 주로 히스패닉들이 하지. 그들은 천하의 미국 사회도 우리 같은 사람들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주장하지. 아닌 게 아니라 이들이 단결이 잘 돼 예컨대 1주일만 손을 놓으면 미국이 뒤집히는 일이 일어날 거야. 맨해튼 거리는 음식쓰레기로 악취가 진동할 테고, 플로리다의 감귤 농장들은 죽을 맛이겠지."

"월가를 움직이는 금융인들은 이들의 귀중함을 모르겠지만 자신들도 엄연한 미국 경제 기여자들이라고 말하지. 이들은 그런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모였던 거야. 사실 어떤 고급스럽고 돈 잘 버는 일에도 허드레 일손은 필요한 거지. 고기를 즐기는 미국인들도 도살장과 푸줏간에서 막일을 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그걸 입으로 즐기기 어렵지. 세계 최대의 소매점이라는 월마트도 물건을 실어 나르는 포터와 트럭 기사들이 없으면 한순간에 멈춰설 거야."

"이들이 파업해 미국 사회가 마비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한 도시에서 부분적으로는 일어날 수 있겠지만 미국 사회 전체를 궁지로 몰아넣지는 못할 거야. 그건 이들이 다들 흩어져 있어 의사와 행동을 한 곳으로 결집하기 어렵기 때문이지."

LA 다운타운에서 이들은 노동절 정오 약 25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민자 없는 날' 행사를 가졌다. 그 뒤 오후 4시 맥아더공원으로 이동, 40만 명 이상으로 시위대가 늘어난 가운데 대형 성조기와 멕시코 국기 등을 앞세우고 윌셔 대로를 따라 라브레아 거리까지 행진했다. 이들 뒤를 따라가던 소왕이 대형 슈퍼마켓 앞에 걸린 안내문을 보고 물었다.

"early-bird specials이라고 써 놨는데 무슨 뜻이야?"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먹는다는 말 알지?"

"그 정도는 알지. 근데 그걸 패러디한 속담이 요즘 인터넷에서 도는 거 알아?"

"그래? 뭔데?"

"일찍 일어난 벌레가 새에게 잡아먹힌다는 거야." 소왕은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도 적응해가고 있었다.

"정말 기발한 패러딘데…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엄마들의 잔소리에 대한 애들의 반항도 담은 것 같은데. 하여튼 early-bird specials은 아침 일찍 쇼핑 오는 고객에게 할인을 해준다는 것인데, 한국에도 비슷한 게 있지. 선착순 판매가 그거지. 그런데 미국에선 선착순이라기보다는 오전 8시까지와 같이 시간을 정하는 경우가 많아."

<이민자를 향한 차가운 시선들>

LA 경찰국은 이날 하루 시위에 참가할 연인원을 100만 명으로 예상하고 무장한 경찰을 다운타운과 코리아타운 일대에 집중 배치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으나 다행히 별 충돌은 없었다. 시위대는 "잠자는 거인이 깨어났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행진했으며,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LA시장은 "수십만 명이 평화적인 시위를 펼쳐 자랑스럽다"면서 "오늘의 평화 시위 정신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룩하자"고 말했다.

"아메리칸 드림, 웃기고 있네." 지나가던 한 시민이 뱉는 말이었다.

중남미 이민자들의 제2의 고향으로 불리는 플로리다주의 홈스테드에선 이른 아침부터 수천 명의 과수원과 농장 노동자들이 행진을 벌이며 이민법 반대시위를 벌였다고 방송들은 전했다. 뉴욕시에서도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정오가 지나자 잠시 일손을 놓고 쇼핑객을 포함한 다른 지지자들과 팔짱을 끼고 인간띠를 이루며 시위를 벌였다고 했다.

"미국 사회엔 여전히 불법이민자들로 인해 사회불안이 가중되고 이들이 자신들이 내는 세금을 축낸다는 시각들이 적지 않습니다. 의회에서 만든 새 이민법안도 이런 누수를 막겠다는 뜻입니다. 미국엔 현재 약 1100만 명에 달하는 불법 체류자들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720만 명이 취업 중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미국 전체 취업자 수의 5%를 차지하는 비중이지요. 이들이 그만큼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는 불만도 적지 않습니다."

ABC방송에 나온 한 보수파 논객은 이렇게 주장했다.

같이 출연한 한 시민이 맞장구를 쳤다. "불법체류자들의 취업으로 미국 소비자들과 기업들은 싼 임금 등으로 혜택을 누리지만 미국에서 출생한 근로자들은 이로 인해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불법이민자들은 의료보장, 학교교육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연방정부, 주 정부 및 지역 재정에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물론 납세들로서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이강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이민자들을 보는 시각이 많이 차가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의 고급 인력 유입도 줄어들자 그제야 미국 행정부는 까다로운 비자와 이민 절차를 조금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일할 고급 두뇌로 한정했기에 보통사람들의 진입은 여전히 어려웠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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