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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실미도' 24일 개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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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에 무장간첩/31명이 경복궁 뒤까지 침투/서장 전사 6명 피살/생포간첩 '청와대를 까러왔다'(1968년 1월 22일자 중앙일보)"

"군 특수범, 경인가도서 무장난동/섬 수용소 탈출 버스 뺏어 대방동까지/24명 중 14명 자폭/공비로 오인/생포자 말 '너무 억눌려 속아 살았다'(1971년 8월 24일자 중앙일보)"

30여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두 사건 사이에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실미도'가 바로 그에 대한 답변이다.

71년 공비로 오인됐던 군 특수범들이 실은 평양에 침투, 김일성을 죽이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특수부대원이었다. 북한의 청와대 기습시도 직후인 68년 4월 만들어졌기에 이름도 '684부대'였고, 부대원도 그때의 북한 무장간첩 수와 같은 31명으로 구성됐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살인미수로 사형 판결을 받은 강인찬(설경구)을 비롯, 남한에서 더는 발붙일 곳이 없는 처지였다. 684부대원들에게는 임무를 완수하고 살아돌아오기만 한다면 명예와 부를 거머쥘 유일한 기회였던 셈이다.

'실미도'는 이런 실화를 다룬다는 점 외에도 제작비가 1백억원에 육박한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충무로의 관심을 모아온 작품이다. 대원들의 훈련과정은 실제 현장인 인천 앞바다의 외딴 섬 실미도에 세트를 짓고 숙식하면서 촬영했다. 그러나 건달끼 줄줄 흐르던 31명이 실미도에 상륙해 군복으로 갈아입는 순간, 관객들은 큰 돈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편이 좋다.

그들은 이렇다 할 최첨단 무기가 아니라 오로지 맨몸뚱이에 의지해 평양에 침투해야 하는 처지였고, 그런 시대였다. 몽둥이 찜질로 육체를 단련하고, 인두로 살갗을 지지는 고문에 대비 훈련을 거치는 동안 스크린에는 배우들의 원시적인 땀냄새, 살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강우석 감독이 '투캅스'에서 보여줬던 아이러니한 웃음이나 '공공의 적'에서 보여준 정교한 연출은 몸과 몸이 부딪치는 화면의 거친 힘에 자리를 내어준다.

'실미도'의 초반부는 북한의 기습으로 벌어진 교전장면과 강인찬이 연회장을 습격하는 장면을 숨가쁘게 교차하면서 시작한다. 이후로도 영화는 짧은 커트의 빠른 장면 전환으로 속도감을 낸다. 월북자를 아버지로 둔 강인찬은 연좌제 때문에 번번이 사회진출이 막힌 뒤로 폭력배가 돼버린 인물이다. 이런 강인찬과 사형집행장까지 걸어갔던 한상필(정재영), 20여차례나 북파공작을 수행한 훈련대장 최재현(안성기)을 제외하고는 인물들의 과거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실미도'는 사실 주.조연을 구별하기 힘들다. 영화는 어느 한 개인의 사연을 파고드는 대신 부대원들과 훈련담당 군인들의 집단적 현실을 보여주는 데 몰두한다. 배우 가운데 임원희가 유일하게 웃음을 주는 역할이고, 그 흔한 연애담 따위는 아예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극기훈련식으로 밀어붙이는 이 영화가 결국 눈물 나는 드라마를 엮어내는 것은 이런 원초적인 인물들의 독기 덕분이다.

실화의 무게는 녹록지 않다. 특히나 관련자 대부분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경우는 그 무게가 더하다. 영화'실미도'는 이야기의 잔가지를 과감하게 쳐내고, 한 가지 목표에 무식하게 매달렸던 집단의 운명을 뚝심있게 따라간다. 할리우드식으로 보면 이상한 블록버스터다. 화려한 의상도, 대규모 액션도 없다. 대신 실화의 무게에 짓눌리는 않는 뚝심이 단단히 한몫한다.

이후남 기자

*** 영화 뒷얘기

"제가 본래 술을 잘 마시는데, 실미도에서 두 달 간 촬영하며 마신 술이 그전 1년간 마신 술보다 더 많았습니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밤마다 술잔을 기울이지 않고는 잠이 안왔습니다."

지난 10일 시사회 직후 강우석 감독의 말이다. 수년째 영화계 '파워맨'설문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해온 그이지만 '실미도'는 전례없는 '파워'를 요구한 작품이었다. 총 7개월여의 촬영기간 동안 외딴 실미도에서는 발전기부터 설치해가며 촬영을 해야 했고, 수중훈련 장면은 지중해의 말타 스튜디오에, 동계훈련 장면은 뉴질랜드까지 다녀왔다. 배우들은 실제에 준하는 육체적 훈련과 고통을 감수했다. 강감독은 "보트에 매달려 바다에 떠있는 장면에서 '컷'을 부르고 나니까 설경구씨가 물에 가라앉을 뻔한 일도 있었다"고 돌이켰다.

설경구씨는 "뉴질랜드에서 동계훈련 장면을 찍을 때는 팬츠 바람에 맨발로 만년설 위를 내달리느라 다들 발이 찢어졌다"면서 "촬영 전에는 실화라는 점이 겁도 났지만 1백여명의 제작진이 서로 의지한 덕분에 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작진 가운데 제일 연장자였던 안성기씨는 "제가 웃통을 벗고 첫 촬영을 한 날 밤부터 다들 몸을 만드느라 난리가 났다"면서 "실제 제 몸보다 화면에는 덜 나왔다"고 좌중을 웃겼다.

무엇보다도 소재가 실화라는 점이 어깨의 짐을 더했다. 강감독은 "국가적으로 창피한 과거를 왜 다시 꺼내느냐는 분도 있겠지만 이런 야만의 시대를 우리가 거쳐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 묘사된 훈련과정이나 사고에 대해서는 "실제로는 훨씬 더 심했다"고 전했다.

반면 강인찬 같은 인물의 신상은 가공의 산물이다. "생포된 사람도 모두 사형돼 어떤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인지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북파공작원 출신 관객이 '실미도 부대가 아닌 북파공작원들도 범죄자 출신인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지적하자 "광고를 따로 내서라도 그런 오해가 없게 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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