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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생각은…

'사돈댁 나라'의 문화도 알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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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세계화 추세는 우리의 결혼 영역을 세계로 넓혀가고 있다. 이미 7만여 명이나 되는 외국 신부가 세계 도처에서 한국으로 시집왔으며, 농촌의 경우 40%는 외국 신부와의 결혼이다. 2010년에는 국제결혼 가정에서 태어난 초.중.고생을 합한 수가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이 하루속히 한국말과 한국 풍습을 익혀 한국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노력이 각계각층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국디지털대의 온라인 교육을 통해 '다문화'에 대해 배우는 외국 신부와 가족들을 만나면서 42년 전 미국에 유학 갔을 때의 나를 생각했다. 한국의 연평균 국민소득이 100달러 미만이었던 때였다. 나는 그곳에서 가난한 나라에서 온 불쌍한 유학생 취급도 받아보았고, 그들이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풀 때는 동정으로 생각하고 여러 모임의 초대를 사양하는 객기도 부렸다. 외국에서 시집온 신부들도 행사장에 동원될 때면 내가 느꼈던 것과 같은 감정을 가질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무관심하거나 방임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다민족 사회에서 살아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돕는 데 유의해야 할 몇 가지를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보았다.

첫째, 그들의 자존심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들이 우리말과 우리 풍습을 배우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회성에 그치거나 행사 위주는 삼가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교육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그들의 자녀 교육에는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둘째, 외국 신부들의 교육 못지않게 신부들의 시댁 가족들이 '사돈댁'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교육과정에 포함돼야 한다. 즉 교육은 다문화 가정 전체의 교육이어야만 한다.

셋째, 개인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도 언론기관들은 선정적인 보도를 삼가야 한다. 근래 언론에서는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의 이혼율이 높다고 크게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2004년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에서 미국.영국 다음으로 높았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넷째, 우리가 다문화 사회로 가는 것이 피치 못할 현실이라면 다문화 사회의 강점을 사회에 널리 홍보하는 일이 필요하다. 만일 어떤 사회가 문화적으로 지극히 동질적이고 사회 규모가 작으면 외부에서 오는 새로운 문화 전파에 잘 견디지 못한다. 19세기 말 호주의 원주민인 이르요로트 부족에게 하찮은 쇠도끼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이 부족의 사회질서는 완전히 파괴됐다. 이 사회의 기존질서는 수렵 기술로 정해졌는데, 성능 면에서 우수한 쇠도끼를 가진 새로운 지배층이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다양한 종족이 더불어 사는 미국은 여러 문화에서 오는 혜택으로 독창성을 발휘하게 했다. 매년 과학 부문에서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 1이 미국 출신이다. 외국 신부를 맞은 가정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세계화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면 이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편이 현명하지 않을까.

김중순 한국디지털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