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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값 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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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농산물은 공산품에 비해 여러모로 가격 변동이 심하다. 왜 그럴까.

최초의 경제통계학자로 꼽히는 17세기 영국의 그레고리 킹은 옥수수 생산량이 조금만 변해도 옥수수값이 큰 폭으로 요동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여러 해에 걸친 면밀한 관찰 끝에 옥수수 공급량의 변화에 따라 가격이 얼마나 변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표를 만들었다. 이 표에 따르면 수확량이 10% 줄면 값이 30% 오르고, 20%가 줄면 가격은 80% 상승하며, 수확량이 절반으로 떨어지면 값은 450%나 급등한다.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성을 최초로 체계화한 이른바 '킹의 법칙'이다.

현대 경제학은 이를 농산물의 수요나 공급이 모두 가격변동에 비탄력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쌀값이 오르거나 내린다고 해서 쌀의 수요나 공급이 곧바로 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는 거꾸로 농산물의 수요나 공급에 작은 변화만 있어도 가격이 크게 오르내리는 원인이 된다.

생산량과 가격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등락을 거듭하는 농산물도 있다. 19세기 미국에선 옥수수와 돼지의 생산량과 가격이 시차를 두고 엇갈리면서 오르내리는 특이한 현상이 발견됐다. 어느 해에 옥수수가 풍작을 거두면 사료용 옥수수값이 떨어지고, 돼지 사육두수가 늘어난다. 그런데 다음해엔 옥수수 농가들이 재배면적을 줄이는 바람에 옥수수값이 오르고, 돼지 농가들은 사육두수를 줄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값이 오른 데 고무된 옥수수 농가들은 그 다음해에 거꾸로 재배 면적을 늘린다. 이처럼 2년을 주기로 옥수수와 돼지의 생산량과 가격이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증감과 등락을 거듭하는 현상을 '콘-호그주기(Corn-Hog cycle)'라고 한다.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개별 농가의 합리적인 행동이 농가 전체로는 손실을 부르는, 이른바 '합성의 오류'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된다. 잊을 만하면 다시 나타나곤 하는 돼지 파동과 김장용 배추 파동이 대표적이다. 농민들이 개별 이익을 앞세워 수급 판단을 거꾸로 하는 바람에 새끼 돼지를 구덩이에 파묻고, 멀쩡한 배추밭을 갈아엎는 일이 주기적으로 거듭되는 것이다.

최근 한우값이 폭락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소값 파동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금지된 동안 한우 사육두수를 한껏 늘렸다가, 수입이 재개될 듯하자 다투어 소를 내다 팔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냉정을 잃지 않아야 소값 파동을 피할 텐데.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