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 치우친 「백범암살 배후」보도/김종혁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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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쉽게 흥분하고 열을 내다가도 이윽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고 마는 우리사회의 「냄비근성」에 대한 자성의 지적은 어제 오늘만이 아니고 항상 되풀이 돼온 일이다.
지난 한주동안 신문의 사회면을 온통 도배질한 백범암살범 안두희의 때늦은 고백(?)과 배후세력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는 우리언론의 이같은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었다.
백범시해진상규명위원장 권중희씨가 안씨로부터 『당시 정보부소령이었던 김창룡과 미OSS로부터 백범암살의 「암시」를 받았다』는 아리송한 자백(?)을 받아내 언론사에 제보함으로써 시작된 보도는 「암시」가 「지시」가 되고 「배후세력」이 되면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안씨는 이미 숨져 확인이 불가능한 장택상·노덕술등의 이름을 들춰대며 횡설수설했고 언론은 아무 검증없이 무조건 크게 보도하기에만 열을 올렸다.
안씨가 모방송국으로부터 신변보장을 받아가며 증언한다고 1시간 가까이 방송에 출연한 것은 가위「압권」이었다.
몇년째 중풍을 앓고 있는데다 권씨로부터 자백을 강요받으며 매를 맞아 온통 멍투성이가 된 안씨는 『몇몇 사람으로부터 암시를 받긴 했지만 구체적인 명령을 받은 적은 없으며 배후도 없다』며 지금까지의 보도를 깡그리 부인했다.
게다가 『백범암살은 민족을 위해서나 백범본인을 위해서나 잘한 일』이라는 궤변을 늘어 놓기까지 했다.
안씨의 이같은 증언은 백범암살후 사형에서 무기,다시 15년으로 감형되고 곧바로 풀려나 현역장교로 복귀한 뒤 누군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군납업자로 재기,호의호식한 안씨의 삶과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한때 거짓임이 분명했지만 아무 여과없이 전파를 탔다.
안씨의 증언이 방송되던날 신문사에는 『새로울 것도 반성도 없는 안씨의 말을 그대로 내보내 오히려 면책을 시켜주는 이유가 뭐냐』『중풍걸린 노인을 때려 억지자백을 받아낸 것이 옳으냐』는등 항의성 전화가 많이 걸려 왔었다.
백범암살배후에 대한 보도는 결과적으로 과거의 역사를 현재로 끌어내 다시 한번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새로 밝혀낸 부분은 거의 없고 내실없이 흥분만 한 격이어서 역사를 너무 흥미위주로 다루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제는 역사문제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가 어때야할지 언론인들 스스로가 고민해야할 때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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