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았다" 봇물터진 양심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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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정치권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대선자금과 관련한 의원들의 양심선언 성격의 폭탄 발언이 꼬리를 물었다.

한나라당 권오을.열린우리당 김덕배 의원이 대선 때 지원받은 돈의 액수를 자진 공개했다. 민주당 김경재 의원은 "내지도 않은 특별당비가 내 이름으로 납부돼 있더라"고 털어놓았다.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의 고강도 수사가 급피치를 올리고 있는 시점에 터져나온 이 같은 발언들은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대선 때 1억2천만원 받아"=한나라당 권오을 의원은 CBS라디오에 나와 "지구당 회계책임자에게 확인한 결과 국고보조금과 당 지원금을 합쳐 1억2천만원이 선관위에 신고됐으며 다른 지구당도 1억원을 전후한 자금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97년 대선 때보다 지원이 많았다는 게 모든 지구당위원장들의 얘기"라며 "싸움이 치열한 곳은 더 보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말대로라면 한나라당은 지구당 지원금으로만 2백70억원가량을 썼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선관위에 신고한 대선자금 총액(2백26억원)을 웃도는 금액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지도부는 "전 지구당에 일률적으로 똑같은 액수를 지원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호남 등 열세 지역엔 상대적으로 덜 지원됐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성명을 통해 "기업을 협박해 1천억원대의 불법 자금을 거둔 한나라당은 석고대죄하라"며 "한나라당의 새 당명은 '돈나라당'이 적합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7천만원→5천만원→3천만원'=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사회를 보던 김덕배 의원이 갑자기 "대선 때 선거계좌로 7천만~8천만원 정도가 들어왔다. 이 중 3천만원이 남았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그러자 의원들 사이에서 "난 한푼도 못받았어""왜 쓸데없는 얘기를 해"라는 고함이 나왔다. 김덕규 의원은 "지구당별로 합의해서 공개하자"고 소리치며 회의장을 나갔다.

상황이 묘해지자 천정배 의원은 "우리 지구당엔 2천만원대가 지원됐다"며 "합법적인 자금으로만 선거를 했다는 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애썼다.

파문이 커지자 金의원은 지구당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 뒤 "사실은 5천7백50만원을 지원받았다"고 번복했다. 오후엔 다시 "대선 때 선거비용으로 내려온 액수는 3천만원이고, 2천7백만원은 정당운영비로 지원된 것"이라며 통장 사본을 물증으로 내놓았다.

선대위 총무본부장을 지낸 이상수 의원도 해명에 나섰다. 그는 "돈 문제가 복잡해 착오할 가능성이 크다"며 "지구당에 공식 지원한 총액은 68억9천8백만원"이라고 밝혔다. 자금 출처에 대해 "중앙당 후원금과 노무현 후보 측이 일부 지원해준 돈으로 대선을 치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盧후보 측으로부터의 비공식 자금 유입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특별당비 낸 것으로 돼있더라"=민주당 김경재 상임중앙위원은 기자들과 만나 "대선 때 선대위 본부장들에게 특별당비를 내라고 했는데 돈이 없어서 못냈다. 그런데 며칠 있다 보니 내 이름으로 3천만원의 특별당비가 납부돼 있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추미애 위원도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민주당은 "차명으로 특별당비를 낸 것처럼 서류를 꾸민 것은 어디선가 불법 자금이 들어왔기 때문 아니냐"며 불법 자금의 유입 가능성과 '돈 세탁'의혹을 제기했다.

이정민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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