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작가' 이숙자씨 전시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튼실하게 익은 보리알에는 감동이 있어요. 사랑하는 아내가 만삭이 됐을 때를 바라보는 남편의 심정이라고 할까. 생명의 경이로움과 감동을 느끼게 하지요."

'보리밭 작가'로 알려진 이숙자(65.사진)씨의 말이다. 그는 현재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100~400호 대작을 비롯한 30점을 전시 중이다. 1980년이래 현재까지의 대표작들이다. 그를 유명하게 한 '보리밭'과 '이브의 보리밭'연작이 주종을 차지한다. 그동안 화랑미술제 등에서 소품을 내놓긴 했으나 본격적인 개인전은 2001년 이후 처음이다.

이씨는 "1974년 보리를 처음 그리기 시작했고, 77년경부터 지금 같은 보리 그림이 나왔으니 올해로 30년이 된다"고 소개했다. "보리알을 그리는 건 정말 힘든 작업"이라는 이씨는 "물감을 두껍게 발라 실제로 화면에서 볼록하게 나오게 한 뒤 알맹이마다 명암과 하이라이트를 주고 수염도 한올 한올 그려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감은 광물질을 원료로 한 암채를 쓰기 때문에 미세한 선까지 모두 살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다 보니 100호 짜리 한점을 그리는데 6개월에서 2~3년까지 걸립니다. 기다란 황맥 그림은 2001년 시작해 2005년 완성했지요."

그는 "'보리작가'로만 각인되는 게 싫어 한동안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제는 보리를 그리는 게 너무 감사하다"고 말한다.

"답답하고 힘들 때 보리알과 수염을 꼼꼼히 그리고 있으면 재미있고 편안해집니다.'3시간만 그려야지' 하고 시작한 것이 어느덧 6시간씩 하고 있는 식이지요."

이씨의 보리밭 누드는 89년에, '이브의 보리밭'연작은 91년에 시작됐다. 대담한 자세를 취한 누드 미인들은 관능적으로 보인다.

"인습을 모두 벗겨버린 원초적 자연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지요. 누드는 보리 이삭이나 들꽃처럼 대지에서 태어난 자연의 일부이자 생명의 원천을 뜻합니다."

올해가 정년(고려대 미술학부 교수)인 그는 "앞으로는 의도적으로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런 그림,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밝혔다. 전시는 5월12일까지 계속된다. 02-734-0458

조현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