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잘 만드는 여자' 쓴 김영희씨 서울서 전시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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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잘 만드는 여자'를 쓴 김영희(59)씨가 육순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었다. 사별한 한국인 남편과 사이에 둔 3남매, 독일인과 결혼해 낳은 남매 등 모두 3남2녀를 젖물려 키우며 독일에서 닥종이 조형작가로 활동해온 金씨는 "늙으니 참 좋다"고 벙긋 웃었다.

오는 17일부터 2004년 1월 25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을 여는 그는 "평생 생일을 안 찾아 먹었는데 회갑을 맞으며 처음 잔칫상을 차린다"고 나이 드는 기쁨을 털어놨다.

"노인에게 '젊게 산다'고 덕담하는데 굳이 젊어지려고 안간힘 쓰는 게 이상한 일 아닌가 싶어요. 이만큼 산 것도 고맙죠. 나머지 인생은 선물이고."

전시회에 나온 닥종이 조형물이 옛 작품보다 밝고 원색으로 화사한 까닭이 이 나이듦에서 왔다고 그는 은근히 자랑했다. 자연스럽게 터져나온 붉고 푸른 색 속에서 생명의 온기가 피어오른다. "인형의 눈을 표현하기가 가장 어려워요. 마음을 조금만 게을리하면 생명력이 없는 인형으로 떨어져 버리니까. 누가 봐도 사람으로 보여야 내 작품으로 인정하죠. 천년 세월을 숨쉬며 사는 종이이기에 가능한 일이니 닥종이를 만든 한민족으로 태어난 건 행운이에요."

金씨는 이번 전시회에 맞춰 창작동화집 '사과나무 꿈나들이'(샘터사)를 펴낸다.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얘기지만 그는 "사실 엄마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라고 했다.

"요새 한국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너무 1등을 강요하는 것 같아요. 저는 아이가 열다섯살이 되면 무릎 앞에 앉혀 놓고 방세는 낼 수 있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것, 잘 살아야 한다는 자존심을 세울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죠. 엄마가 아이에게 줄 제일 큰 선물을 한가지 고르라면 전 40~50대에 외롭지 않은 인간을 키우는 것을 꼽겠어요."

그는 내년 1월 6일을 기다리고 있다. 막내딸 봄누리(20)가 전시장에서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피아노 연주회를 연다. "보세요, 늙으니까 이렇게 좋은 일이 많잖아요."

글=정재숙,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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