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는 1991년작‘Cleavage’(114.3 x 76.2 x 196.9㎝, 대리석). 오른쪽은 98년작 설치‘Cell Ⅷ’의 철망에 붙어있는 거미.
20세기 조각의 거장 루이스 부르주아(96)는 스스로 "나에게 예술은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작업이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무의식과 내면의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해 욕망, 쾌락, 사랑과 고통, 소외, 고립 등의 경험을 표출했다.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는 그에게 심리적 치료와 같은 것이었다.
부르주아는 '20세기 최고의 페미니즘 작가'로도 불린다. 하지만 기존의 어떤 양식이나 범주로도 쉽게 설명되지 않는 독자성으로 더 이름 높다. 작업은 추상에 가까운 기둥형태의 인물상에서 에로틱한 조각, 손바늘질한 천조각까지 다양하다. 198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여성 최초로 회고전을 열었으며 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올 가을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갤러리를 시작으로 유럽과 미국을 순회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예정돼있다. 국내엔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과 명동 신세계 백화점 본관 옥상에 대형 거미 모양의'마망'과 '거미'가 설치돼 있다.
서울 사간동 국제갤러리는 20일 '루이스 부르주아:추상'전을 개막한다. 개관 25주년을 맞아 600평 규모의 신관을 신축하면서 여는 첫 전시다. 부르주아의 1940년대 초기작에서 2006년의 근작까지 대표적 추상조각과 드로잉 등 25점이 나왔다.
1층 전시장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철망 캐비닛 형태의 'Cell Ⅷ(밀실)'이다. 양탄자 뒤편에 대리석 귀 두 개가 조명을 받고 있다. 아버지와 가정교사의 불륜 소리를 듣던 자신의 귀다. 철망에는 청동 거미가 한마리 붙어있다. 연약하지만 포용력 있게 가정을 지켜온 어머니를 상징한다.
왼쪽엔 2톤짜리 대리석 작품 'Cleavage'(사진)가 자리 잡고 있다. 추상조각이라지만 여성의 성기와 가슴 등의 이미지가 결합돼있다.
입구 쪽의 설치 'No exit(출구없음)'은 아무 곳으로도 연결되지 않는 계단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불안감을 드러냈다. 양쪽의 공은 고환을 상징한다. 계단의 뒤쪽에 숨어있는 추상적 형태 역시 불륜을 엿듣는 어린 시절의 작가를 연상시킨다. 2층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청동조각 'Coyote'다. 제목은 'Call Off Your Old Tired Ethics(너의 낡은 윤리관을 버려라)'의 약자다. 1947년 당시 매춘 합법화를 요구한 여성해방단체의 이름이자 이들의 시위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국제갤러리 이현숙 대표는 "96세의 작가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작업지시를 하며 창작열을 계속 불태우고 있다"며 "과거 작품들의 주제가 복수나 상처였다면 만년으로 접어들수록 용서와 화해를 담은 작품이 많아진다"고 소개했다. 6월29일까지. 02-733-8449
조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