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느낌!] 물렀거라 나를 비겁하게 만드는 '악마'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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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The Crucible)
29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평일 7시30분·주말 3시(월 공연 없음), 02-580-1300.

공연이 끝나고 무대 인사를 한 뒤 시간은 밤 11시. 3시간30분을 달려왔다. 목은 뻣뻣하고 뒷머리는 무언가에 맞은 듯 얼얼하다. 코끝이 찡하기도 하다. 그래도 극장문을 나서면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과연 얼마 만에 맛보는 묵직함인가.'

원작은 1953년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가 썼다. 전후 미국 사회에 소용돌이친 메카시즘의 광풍,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숨죽일 수밖에 없던 시민들의 모습을 17세기 말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실제 있었던 '마녀 재판'을 통해 비꼬려 했다고 한다. 연출을 맡은 윤호진씨는 본래 이 작품을 유신 말기인 1970년대 후반에 올리려 했다. 이정길.최형인.이낙훈씨 등이 실제로 연습했다. 그러다 10.26 사태가 터지며 작품은 낙마한 채 30여 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됐다. 그렇다면 현재에도 이 작품은 '동시대성'을 가질까.

군사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70, 80년대 '시련'이 공연됐다면 분명 큰 울림을 가졌을 법하다. "당신이 과연 악마와 연계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시오" 같은 논리가 민주화가 진척되고 개인주의가 만연된 21세기에도 공감을 얻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가지는 위력은 보편성이다. 아무리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라도 우린 또 다른 '악마'에 노출돼 있지 않을까.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조직 논리'등. 게다가 현실에서 그런 것처럼 작품 역시 말도 안 되는 '폭력적 논리'를 교묘하고 세련되게 포장한다. 그런 속에서 개인의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처세술'이 최고의 가치인양 떠받들어지고 있는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작품을 보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도록 하는 게 '시련'의 화법이다. 김명수의 재발견은 이 작품의 또 다른 미덕. 공연이 해마다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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