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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차곡차곡 쌓는 탑 꼭대기는 비우고 비워 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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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교회에 가도, 성당에 가도 기도를 합니다. 절에 가도 마찬가지죠. 사람들은 108배, 3000배를 하면서 기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늘 기도를 합니다. 불완전함을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예수님, 부처님, 절대자 앞에 엎드립니다. 그 안에 '출구'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죠. 자유를 향한 출구, 진리를 향한 출구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기도가 출구를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역방향으로 달리는 기도도 많습니다. 사람들의 기도 소리를 들어보세요. 맺음말이 비슷합니다. "~하게 해주십시오." 내용까지 똑 닮았죠. "제 가족이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십시오" 아니면 "제 공부가, 제 사업이 잘 풀리게 해 주십시오." 찬찬히 뜯어보면 '나의 바람' '나의 가짐' '나의 집착' '나의 욕망'을 들어달라는 기도죠.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죠.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장21절). 세계적인 명상가인 지두 크리슈나무르티(1895~1986)도 말했습니다. "이런 기도(외침)가 대답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자기 연민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This cry may find an answer, but the answer is the echo of self-pity)"고 말이죠.

산 속 사찰 진입로의 양옆에는 종종 돌탑이 있죠. 조심스레 쌓아놓은 돌 위에, 또 돌 하나를 올립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두 손을 모으죠. 탑은 기도와 기원의 대상이니까요. 그래서 탑 주위를 돌기도 하고, 탑 앞에서 고개를 숙이기도 합니다.

땅에서 탑을 볼까요. 그럼 그 의미는 '쌓음'입니다. 한 칸, 또 한 칸씩 쌓아가는 과정입니다. '나의 바람을 이루게 해달라'는 간절함을 쌓는 거죠. 그런데 하늘에서 탑을 보면 어떨까요.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탑은 철저하게 '비움'을 뜻하게 되죠. 한 칸, 더 작게 한 칸, 더욱 더 작게 한 칸씩 비워서 올라서는 과정이거든요. 마지막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네, 맞습니다. 뾰족한 꼭대기 혹은 철침만 남습니다.

그게 가리키는 곳이 어디일까요. 텅 빈 허공, 무한한 하늘입니다. 쌓고, 쌓고, 쌓아서 가는 기도의 종점은 탑의 꼭대기입니다. 결국 땅 위에 머물죠. 그러나 비우고, 비우고, 비워서 가는 기도의 종점은 무한한 우주입니다.

주 기도문을 보세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복음 6장10절) 그때는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는 거죠. 그럼 그 사이를 잇게 하는 기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비움과 참회, 회개가 그 열쇠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3장2절)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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