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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제재 발동은 신중하게(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하며 유엔의 역할과 기능이 전에 없이 기대되는 가운데 유엔안보리가 리비아에 대해 민항운항금지 등의 제재조치를 결의했다. 냉전구조 붕괴이후 이라크에 내렸던 무력제재에 이은 유엔의 두번째 집단제재조치다.
직접적인 무력침략이 아니고 테러활동 등을 통해 국제적인 불안을 조성하는데 대해서도 유엔이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주목할만한 일이다. 이 결의안은 88년 영국 상공을 비행중이던 미국의 팬암기 폭파혐의를 받고 있는 두명의 리비아시민을 인도받아 법정에 세우겠다는 미·영 양국의 요구가 리비아정부에 의해 거부된데 따른 결정이다. 시대적 전환기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국제평화기구로서 유엔이 여러차원에서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는 것은 일단 평가할만한 일이다.
민간항공기를 폭파하는등 테러활동을 통해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만약 그것이 특정국가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다면 마땅히 규탄받아야 한다. 비록 무력침략에 의한 국제질서 교란이 아니더라도 집단적인 제재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번 유엔의 결정을 유도한 미국 등의 명분도 바로 이런 점이다. 이 명분에 리비아가 승복하고 항공기 폭파용의자를 순순히 인도한다면 더이상 바랄 나위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리비아의 태도로 보아 아직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안보리 결의안이 2주일간의 유예기간을 두고있지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타협이 안되면 제재조치가 발동될 것이고 민간항공기의 리비아 취항이 전면금지되며 군사물자와 항공기부품의 거래중지,외교수준의 격하 등이 뒤따르게 된다.
이로 인한 리비아의 타격은 물론 심각할 것이다.
그러나 타격받는 것은 리비아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포함된다는데서 우리는 이번 결의안과 관련해 각별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다른 어느나라에 비해 경제적으로 리비아와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2백억달러 가까운 건설공사 계약에 현재 남아 있는 공사가 70억달러가량 되고 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인력만해도 5천명 수준에 이른다. 당장 항공기 취항이 금지되면서 공사에 필요한 인력과 자재의 수급은 물론 급박한 상황이 벌어질 경우 대피도 문제가 된다. 뿐만 아니라 공사대금은 물론 무역거래대금의 결제도 어렵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우리의 국가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방안마련에 지혜를 짜내야할 때다. 또 경제적 이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근로자들의 신변안전을 위한 대책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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