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지식 갈증|이사라<서울산업대 교수·국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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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젊고 투지 왕성한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에게 외국 문학을 가르치는 그분의 수첩에는 메모나 내일의 공적인 약속, 어제의 기록 따위 대신 매달 음력 날짜 아래 보름달 사인만이 하얀 여백 위에 둥실 떠 있다. 그 날이 되면 되도록 시간을 내 강가로 찾아가 수면 위의 달, 실제의 달, 잔 속의 달과의 사자해후를 하고자 한단다. 이 후기 산업 사회를 살면서 문화를 향유하려는 그의 수첩을 보면 아득한 감동이 일면서 우리의 대학문화·대학교육을 생각하게 된다.
새 학기가 봄처럼 술렁거리면 대학 교양 국어 첫 시간에 만날 신입생들을 상상하기가 두렵다. 그들은 누구들일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몇 해 전 진보적 성향을 띤 어느 대학에 갓 취임한 여교수가 학생들과의 첫 면담에서 매우 공격적인 질문을 받았다던 충격의 여운 때문일까,『교수님은 반공 교수이십니까, 통일 교수이십니까.』
그들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난감하더라는 그 선배가 곧 우리 기성세대 모두일수 있다. 어린 시절 국어시간에 반대말을 열심히 외웠던 우리 교육의 필연적 결과인가. 남자의 반대 여자, 완전의 반대 불완전, 선의 반대 악 등등. 성장하면서 차츰 세상살기에는 회색 거짓말도, 매개정도 있으며 반대말 외우기는 상대적 관계였음도 깨닫게 되고 또한 정치·경제·과학·사회적인 문제 외에 문화의 중요성도 알게 된다.
신입생들과 대화해 보면 대학 교양 국어 시간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문화적 폭 식을 원하며, 청소년기의 보상을 받으려는가를 온 가슴으로 느낀다. 주입식·획일적 고교 교육 방식에 염증이 난 그들은 윤동주·한용운의 시를 제대로 나름대로 여러 방법으로 이해하길 원한다. 청춘의 열정으로 투자하고 싶었던 고전 대작들을 뒤늦게나마 마음놓고 읽을 기회를 얻고자 한다. 그들은 발표와 토론으로 양적·질적 대화의 화학 작용을 일으켜 공감대를 형성하고 또한 성숙한 교양인이 되길 갈망한다. 어디 문학에서 뿐이겠는가.
그러나 입시 투에서는 승리하였으나 문화적 패잔병인 그들이『교수님, 젊은 베르테르 부인의 슬픔이란 작품이 말이죠…』라고 할 때 그들을 치유해야 하는 대학의 교양 국어는 막중한 치료 요법 강구에 힘이 부친다. 그들을 편식 자로 키운 우리의 교육부, 교양 부재의 빈혈 사회, 너와 나 사이의 사고·대화의 단절을 초래하게 할 수밖에 없는 문화 부재 현상.
어떻게든 바뀌어야 한다.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올해도 봄날이 담담해지며 어느 수첩 속에 둥실 떠 있을 달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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