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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 중심 '통섭론'을 반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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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통섭(統攝.consilience)이란 용어가 언론에 회자되고 있다. 스타교수들이 그 개념에 의해 미래 학문을 준비한다고 법석이다. 그러나 정작 통섭론의 본질과 배경에 대한 논의는 미진해 보인다. 통섭론은 본래 미국 하버드대학의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제창했다. 그는 생물학으로 모든 학문을 통합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특히 인간은 생물의 한 종에 불과하므로 생물학에 의해 연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인간 이해를 주도해 온 종교.신학.철학.윤리와 같은 비과학적인 형이상학들은 퇴출돼야 하며, 진화생물학이라는 최상의 과학으로 대치돼야 한다고 강변한다. 생물학이 사회과학을 통합한다고 해서 그 분야를 사회생물학이라고 명명했다. 이처럼 학문의 전 영역을 석권해 천하통일을 이루고자 제시한 것이 바로 '통섭'이란 개념이다. 통섭론에는 이런 과대망상적 수사학이 깔려 있다.

사회생물학의 통섭론은 유물론적 환원주의로 전 학문 영역을 통합하려는 과학제국주의의 대표적인 예다. 외견상 근대학문의 병폐인 극단적 전문화.세분화를 극복하고 학문 간 융합화를 지향하는 듯하나 속으로는 생물학으로 모든 학문 영역을 정복하려는 욕망을 품고 있다. 이것은 지배담론을 지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포스트 모던적 시대정신에 역행하며, 한 과학이론으로 전부를 통제.포섭하려는 계몽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다. 세계학계에서는 이미 윌슨의 지적 오만과 폭력으로 치부하지만 한국에서는 멋지게 포장돼 언론과 학계를 현혹하고 있다.

미래 학문을 위해 학문 간 벽을 헐고, 대화하며 통합을 모색하자는 데는 전혀 이의가 없다. 오히려 과학.종교 간 대화를 앞장서서 추진해 온 사람으로서 적극 환영한다. 그러나 사회생물학으로 모든 것을 흡수통일하겠다는 망상에 근거한 통섭론은 거부한다. 개미나 침팬지를 연구해 나온 결과가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발상은 논리 비약이고 자연주의적 오류다. 그들의 통섭 시나리오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연상케 한다. 윤리를 '유전자가 우리를 기만하는 환상'으로 보는 윌슨의 통섭론에서 생명윤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이보그.로봇인간.키메라 등 무엇이건 포스트 휴먼을 추구하면 그냥 맹종할 뿐이다. 이런 위험천만한 통섭론을 학문 통합의 대안으로 등극하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과열된 분위기가 '줄기세포 사태'의 악몽을 되살리게 해서 매우 염려된다.

김흡영 강남대·한국종교과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