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열며

동대문 벼룩시장 이젠 어디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자, 악어 등짝보다 질긴 핸드백 5000냥, 뽕짝CD 1000냥…."

"아따, 아줌씨 벼룩의 간을 빼먹지. 더 깎아 달라고?"

그들을 만난 것은 3년 만이었다. 주말, 서울 동대문운동장 풍물 벼룩시장에서였다. 걸쭉한 입담도, 손님들과의 흥정도 여전했다.

47세 김양신씨. 두 딸과 아내를 둔 가장. 1997년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은 뒤 청계 7~8가 주변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노점상을 했다. "진품이든 짝퉁이든 없는 게 없다"는 그곳은 그에겐 희망의 터였다. 전국을 돌며 호롱불.전축.레코드판.조각품.옛날돈 등을 모아 팔았다. 먹고살 만했다. 하지만 청계천 개발로 2003년 쫓겨나야 했다. 2004년 1월, 서울시가 임시 영업공간으로 내준 동대문운동장에 새 둥지를 틀었다. 황학동 벼룩시장 노점상 900여 명과 함께. 그때 노점상들을 여러 번 만나 취재했다.

낡은 취재수첩에 적혀 있는 김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벼룩시장을 다시 열 때 덩실 춤을 췄지요"라고 묻자 기자를 대번 알아본다. 요즘 장사가 안돼 죽을 맛이지만 올해 대학에 붙은 큰딸만 생각하면 신이 난단다. 학원 문턱도 못 가봤는데 포항 한동대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팔순의 도자중 할머니. 부천에서 전철 타고, 버스 타고 두 시간 걸려 온단다. 좌판의 등산칼.단장(短杖).줄자.망원경.스패너…. 전 재산이다. 15년 전 아들이 공장 하다 망한 뒤 좌판과 연을 맺었다. "몇 개라도 팔아야 손자'까까'를 사줄 수 있다"며 손님을 붙잡는다.

58세의 순대국밥집 양평 아줌마. 평생 벼룩시장에서 장사해 자식 공부.출가 다 시켰다는 그의 국밥맛과 인심도 여전했다. 금방 잡아온 돼지고기라며 몇 점 더 얹어줬다. 바로 옆 노점 아저씨는 외국인과 손짓 발짓으로 흥정하느라 진땀을 뺀다. 남편과 쇼핑 온 미국인 메리 바스리에르는 "오하이오주 벼룩시장보다 더 싸고 재밌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왔다"며 "원더풀, 서울 플리마켓(flea market)"을 연발했다. 그들은 목각인형.재킷.모자를 샀다.

서민의 애환과 향수가 배어 있는 황학동 벼룩시장의 명맥을 이어가는 동대문 벼룩시장 사람들. 그들의 고단한 삶은 또다시 격랑을 맞게 됐다. 서울시가 바로 곁 동대문야구장을 11월 철거하는 데 이어 내년에 동대문운동장도 헐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세훈 시장은 공약대로 운동장 부지에 '월드 디자인 파크'를 짓는 등 공원화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노점상들도 연말께 운동장을 떠나야 할 운명이다. 서울시는 노점영업은 불법인데 편의를 봐줬을 뿐이라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또 공간을 마련해 주자니 다른 노점상과의 형평이 문제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몰아내면 반세기를 이어온 황학동 벼룩시장의 명맥이 끊기게 된다.

주말마다 수만 인파가 몰리고 각설이패와 약장수 난장(亂場)이 펼쳐졌던 황학동의 현재 모습도 비슷하다. 1층 상가만 남은 삼일아파트 18동 뒤에는 공룡 같은 주상복합 건물이 치솟아 있다. 몇 안 남은 상가도 '철거' 딱지가 붙어 을씨년스럽다. 벼룩시장이 섰던 뒤편의 상가는 영업은 하지만 썰렁하다. 30년간 장사를 한 억척 할머니는 "이젠 다 끝났다"며 담배를 물었다.

도심을 단장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볼거리.즐길거리마저 다 없애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는 명물은 도시의 얼굴이고 문화이자 경쟁력 있는 관광상품이기 때문이다. 쿠리티바(브라질), 파리, 뉴욕 등 주요 도시들은 수공예품과 중고품을 팔고 거리 악사가 공연하는 벼룩시장을 관광상품화하고 있다. 오 시장은 임기 내 12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했다. 노점상도 살리고 외국인에게 서울의 '원더풀' 볼거리를 제공할 해법을 찾는 노력이 아쉽다.

양영유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