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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Movie TV] '반지의 제왕 3' 101% 즐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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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몇몇 장면만 눈여겨 봐도 얼추 본전은 뽑는 영화들이 있다. 17일 개봉하는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The Return of the King)'이 그런 영화다. 완결편(3편)답게 무려 20만명의 디지털 캐릭터를 동원한 펠렌노르 평원 전투 장면을 보고 나면 "1, 2편을 합친 것보다 규모가 크다"는 제작사의 주장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액션 장면 몇개 보자고 화장실 가고 싶은 것 참아가며 3시간 이상을 견디기는 좀 억울하다. 닭다리를 뜯을 때 뼈까지 쪽쪽 빨아 먹어야 제 맛이듯, 영화는 역시 스토리를 즐겨야 제 맛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복잡한 사건 진행과 수많은 등장 인물이 조금 부담스럽다. '영국판 삼국지연의'로 불릴 만큼 방대한 스케일의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를 1백% 즐길 수 있도록, 약간의 사전 지식을 소개한다.

◇ 중간계 역사는 3만7천년=불친절하게도 피터 잭슨 감독은 '왕의 귀환'을 시작하기 앞서 1, 2편 줄거리를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총 6시간55분에 달하는 1, 2편(DVD 확장판 기준)을 전부 보고 극장을 찾더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대사의 '속뜻'을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J R R 톨킨의 원작이 원래 그렇다. 그가 60여년간 쓰고도 마치지 못한 채 사망한 뒤 아들이 정리.출간한 '실마릴리온'까지 읽어야 비로소 "아하, 그렇구나"를 외칠 수 있는 구석이 많다. '실마릴리온'은 '반지의 제왕'의 무대가 되는 중간계(Middle-earth)의 탄생과 역사를 다룬 연대기적 소설이다.

이 책에 따르면 '반지의 제왕'의 주된 사건이 일어나는 시점은 중간계 탄생 3만7천여년이 지난 다음이다("정확히 3만7천63년"이라고 주장하는 톨킨 연구자도 있다). 그 역사를 대충 살펴보면 이렇다. 태초에 유일한 존재인 '일루바타르'가 있었다. 이 양반이 '아이누'라는 신(神)의 종족을 만든다. 그리고 그 중 일부를 자신이 만든 세계인 '아르다'로 보낸다. 아르다로 향한 아이누들은 15명의 신(神) '발라'와 그보다 훨씬 많은 반신(半神) '마이아'가 된다. '반신'이란 신에 비해 능력과 품격이 좀 떨어진다는 뜻이다.

어느 날 발라 중 하나인 '멜코르'가 세계 지배를 꿈꾸며 반란을 일으킨다. 수많은 전투가 벌어지지만 결국 다른 발라들에게 제압돼 '영원한 공허'속으로 쫓겨난다. 여기까지 3만년 걸린다.

이 정도만 알아도 영화 속 대사들이 다르게 들린다. 가령 2편 '두 개의 탑'에서 늑대떼와 싸우다 절벽에서 떨어진 아라곤(비고 모르텐슨)에게 요정 아르웬(리브 타일러)의 환상이 나타나 말한다. "발라의 은총이여, 그를 지켜주소서." 오호, 뭔 소린가 했더니 별거 아니다. 그냥 "신이여, 도와주소서"라는 뜻이다.

멜코르가 추방된 뒤 '암흑의 군주' 자리를 반지의 제왕 사우론이 이어 받는다. 사우론은 원래 멜코르를 섬기던 반신(半神) '마이아'다. 영화 속에서는 절대악의 화신으로 나오지만 악마가 되기 위해 3만년이나 도제식 수업을 받은, 어찌 보면 불쌍한 존재다. 영화 속 사건들이 시작되기 3천1백98년 전에는 강력한 해양 민족인 '누메노르' 사람들에게 패해 암흑의 탑 '바랏두르'에서 내려와 무릎 꿇고 빌기도 한다.

사우론의 주특기는 전투보다는 이간질이다. 누메노르인에게 붙잡혔을 때도 이들을 충동질해 신들에게 반항하게 만든다. 결국 분노한 신은 누메노르인들의 대륙을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한다. 영화에서 반지를 둘러싸고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는 것에도 다 '역사적' 이유가 있었다.

◇ 아라곤은 87세, 김리는 1백39세=호빗.엘프.드워프 등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종족들에 대해 약간만 관심을 기울이면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 종족은 각각 키.언어 등이 크게 다르고, 심지어 특정인에 대한 호칭도 다르다. 마법사 간달프(이언 매켈런)의 경우 '왕의 귀환'에서 종종 '미스란디르'라고 불리는데 이는 요정(엘프)들이 그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그의 본명은 '올로린'이며, '간달프'는 인간이 그를 부르는 이름이다.

톨킨의 자료를 살펴 보면 영화 속 주인공들의 나이를 계산할 수 있다. 인간인 아라곤은 87세, 난쟁이(드워프) 김리(존 라이스-데이비스)는 1백39세다. 웬 '장수만세'냐며 놀랄 일은 아니다. 아라곤은 신에게 긴 수명을 약속받은 누메노르인의 후손이다. 그는 2백살이 넘게 살았다.

김리도 난쟁이의 평균 수명 2백50세를 감안하면 '한창 때'인 셈. 평균 수명이 1백세인 반인족(半人族) 호빗들의 경우 프로도(일라이저 우드)가 50세, 샘(숀 어스틴)이 38세다.

3편에서 드디어 사랑이 이뤄지는 인간 아라곤과 요정 아르웬 커플의 경우 사상 최대의 나이차를 극복한 셈이다. 아라곤이 87세일 때 아르웬은 무려 2천7백77세였으니 말이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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