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부산 오던 쾌속선 고래 추정 물체와 부딪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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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6시20분쯤 부산 태종대 남동쪽 14마일 해상.

일본 후쿠오카(福岡)를 떠나 부산항으로 오던 263t급 고속여객선 코비호가 갑자기 "쿵"하는 충격과 함께 크게 흔들렸다. 부산항 도착 예정시간을 20분 남겨 놓고 짐을 챙기느라 자리에서 일어났던 승객들이 쓰러지며 객실은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승객들이 의자와 벽 등에 부딪쳐 피를 흘렸고, 일부는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냈다. 승객 중 오모(75.여)씨는 객실 의자에 머리를 부딪쳐 정신을 잃었다. 그는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고래가 사람을 잡았다.

한.일간을 운항하는 쾌속 여객선 코비호가 대한해협에서 고래로 추정되는 물체와 충돌해 승객 한 명이 숨지고 중경상을 입은 27명이 입원치료 중이다. 나머지 승객 80여명은 간단한 치료를 받은 후 귀가했다. 이 사고로 배 앞쪽 수중날개가 떨어져 나가고 기관실 일부에 물이 찼다. 한일 항로에서 고속 여객선이 운항 중 고래로 추정되는 물체와 충돌하는 사고로 승객이 숨지기는 처음이다. 코비호는 이날 승객 215명과 승무원 8명을 태우고 시속 75㎞로 운항하던 중이었다.

해경은 충돌한 부유물체의 길이가 10m쯤 되는 데다 사고 직후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는 승객들의 진술로 미뤄 고래와 충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고가 나자 해군 고속정과 해경 경비정 등 5대가 출동해 승객들을 구조했다. 여객선은 해경 예인선에 의해 13일 오전 1시30분쯤 부산항으로 끌려왔다.

선박과 고래가 충돌하는 사고는 비행기 엔진 등에 새들이 부딪치는 '버드 스트라이크'에 빗대 '십 스트라이크(ship strike)'라고 불린다.

경찰은 대한해협에서 서식하는 고래 수가 늘면서 쾌속 여객선과 고래가 충돌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04년12월 이후 한일해협에서는 쾌속 여객선과 고래로 추정되는 물체와 충돌하는 사고는 모두 5건 발생했다. 해양수산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여객선-고래 충돌 방지용역결과' 에 따르면 4.5월에 사고가 잦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장 김장근 박사는 "4.5월은 겨울철을 남쪽바다에서 보낸 고래가 먹이가 풍부해진 북쪽 바다로 이동하는 시기라서 사고가 잦다"라며 "다양한 사고 예방장비가 개발 중이지만 운항하는 선박이 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부산=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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