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주민들 '님비'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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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원지동의 추모공원 건립을 놓고 서울시와 서초구민 사이에 벌어진 법정 공방이 6년 만에 끝났다.

대법원 1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12일 추모공원을 설립하려는 서울시에 반대해 이 지역 주민 10명이 낸 소송(도시계획시설 결정 취소청구)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서울시는 주민들의 반대로 그동안 중단했던 추모공원 건립을 다시 추진키로 했다. 특히 이번 대법원 판결은 자신의 거주지에 혐오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이른바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현상'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시 측을 대리한 이헌(46)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님비 현상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주민들은 서울시의 결정이 행정절차법 등을 어겼다고 주장하지만 서울시는 정당한 절차에 따라 공청회 등을 개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추모공원 설립의 발목을 잡았던 법적 걸림돌은 해소됐지만 주민들의 반발은 여전히 강해 추모공원 설립까지는 첩첩산중이다.

◆ 주민 반발 해결이 과제=청계산 지키기 시민운동본부 김이태 총무는 "법원에서는 서울시 손을 들어줬지만 우리 마을 인근에 화장장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겠다"고 밝혔다. 현재 원지동 추모공원 예정 부지 경계에서 1㎞ 안에는 1000여 가구 4000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설득할 수단이 별로 없다는 게 서울시의 고민이다. 추모공원은 자원회수시설(쓰레기소각장)과 달리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할 규정이 없다.

서울시는 2003년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을지로에 있는 국립의료원을 옮기는 방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이 카드도 불가능하다. 정부가 지난해 국립의료원을 충남 연기.공주의 행정도시로 옮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원지동 주민들과 충분한 대화를 해 합의를 끌어내는 데 힘을 쏟으면서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합의가 안 되면 추모공원 건립을 강행할 방침이다.

◆ 부족한 서울시 추모공원=서울환경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타 시.도 추모공원 이용 비율은 2000년 18.3%에서 2004년 22.4%로 증가했다. 추모공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00년 SK그룹은 고 최종현 회장의 유지에 따라 추모공원(건립비용 400억원)을 무상으로 지어 기부하겠다는 뜻을 서울시에 밝혔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2001년 원지동 일대 4만9000평을 추모공원 부지로 확정하고 화장로 20기의 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청계산 지키기 시민운동본부가 2002년 소송을 내 추모공원 건립 사업은 중단됐다.

신준봉.성시윤.김승현 기자

◆ 추모공원='화장장'이라는 용어가 혐오감을 주기 때문에 '추모공원'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추모공원에는 화장로.납골당.장례식장 등이 들어선다. 현재 서울시에서 운영 중인 벽제 화장장(경기도 파주시 용미리)은 23기의 화장로를 갖추고 하루 평균 82구(한 기당 3.5회)를 처리하고 있다. 이용자는 서울 시민 77%, 나머지는 다른 시.도 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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