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오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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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봄소식 기다려
날마다 문밖에서 서성댔더니
마당귀 얼어붙은 수돗물
졸졸 녹아 흐른다.
꽃소식 기다려
날마다 담 너머 눈길 줬더니
창가의 풍향란
다소곳이 꽃대궁 밀어 올린다.
아, 봄은
안으로부터 오는구나
그래서 꽃들은
자신의 더운 피로 붉어지는구나.
구 소련이 내부에서 붕괴되듯
추위도 안에서 무너지는 것.
방안에 놓인 난 한그루
조용히 스스로를 응시하는
봄날 오후.

<◇약력>
▲68년 『현대문학』에 시 「잠깨는 추상」으로 추천등단
▲시집 『반란하는 빛』 『무명연시』 『불타는 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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