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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럽통합 앞두고 거센 여론(지구촌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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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차 우측통행 우리도 합시다/마차시절 좌측관행 남았다는 설/외국여행때 “착각교통사고” 잦아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차량좌측통행을 실시하는 영국에서 유서깊은 이 제도를 폐지하고 우측통행을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남들은 모두 우측통행을 하는데 영국만 좌측통행을 하는데서 오는 손해와 불편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다가 지난해 타결된 유럽통합조약에 따라 내년부터 유럽공동체(EC) 회원국 국민들의 회원국간 왕래가 크게 늘어나게 되면 영국인들이 입는 손해는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년 1월1일부터는 EC 12개 회원국을 하나의 시장으로 묶는 시장 단일화가 발효되며 8개 회원국간 국경통제를 폐지하는 셴겐조약도 발효될 예정이다. 이미 국경통제가 크게 완화되어 있는 EC회원국 국민들 대부분은 이웃나라를 여행할때 큰 어려움 없이 승용차를 이용하고 있지만 우측통행에 익숙지 않은 영국인들은 걸핏하면 사고를 내거나 비싼 택시를 타야만 하는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영국인들은 우측통행이 일반화되어 있는 나라들로부터 수입한 차를 사는 경우 핸들 위치개조 비용 때문에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1백파운드(약13만4천원)에서 3백파운드 정도 비싸게 사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영국의 자동차회사조차 점차 국내용 승용차의 가격을 수출용보다 비싸게 매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체생산량중 수출물량이 국내 판매량보다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영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있어 영국인들이 외국에서 겪는 것과 똑같은 어려움도 적지 않은 문제가 된다.
이처럼 많은 불편이 따르는 좌측통행제도가 영국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분명치 않다.
과거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시절,마차에 탄 사람들이 마차의 오른쪽에 앉아야 채찍질하기가 편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고,말을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여행도중 노상강도를 만났을 때 왼쪽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아 대적하려면 길 왼쪽으로 붙어 다니는 것이 유리했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이에 비해 유럽대륙에서는 마차가 대부분 4마리 이상이 끄는 형태였으며 마부들은 마차위에 앉지 않고 왼쪽 뒤에 매어진 말의 등위에 앉아 마주오는 마차등과 부딪치는 것을 피했기 때문에 우측통행이 정착됐다는 설명이 있다.
어쨌든 이같은 관행의 차이는 오래된 것이어서 과거 나폴레옹은 영국군과 전쟁을 하면서 행군하는 영국군대와 마주쳤을 때 영국군에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프랑스군대는 반드시 오른쪽으로 행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일화도 있다.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면서 좌측통행이 정착된 것은 영국만이 아니었다. 유럽에서도 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스웨덴·아이슬란드·아일랜드 등이 좌측통행을 실시했었다.
그러나 이들 나라들은 나치가 점령했던 시절에,또는 지난 60년대에 대부분 우측통행으로 바꾸었다.
지금까지 좌측통행을 고집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로 아일랜드·몰타·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호주·홍콩 등 거의 60개국에 달하고 있다.
그밖에 오늘날 자동차왕국으로 등장한 일본도 좌측통행을 고수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아마도 일본에 자동차가 등장하기 시작하던 시절,영국산 자동차를 주로 수입해다 썼기 때문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경우 좌측통행을 고수하려는 자세는 오히려 영국보다 더 완강해 지난 78년 일본 영토이면서도 미군주둔의 영향으로 우측통행이 정착됐던 오키나와에서 우측통행을 좌측통행으로 바꾼 바 있다. 이것이 우측통행을 좌측통행으로 바꾼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한편 영국에서 우측통행을 채택해야 하는 이유는 계속 늘고 있지만 이를 시행하는데 따르는 어려움도 대단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스웨덴이나 아이슬란드의 경우 지난 60년대 통행방향을 바꾸었을때 교통사고가 상당기간 약 10%이상 증가한 바 있는데 당시 이 나라들의 차량수는 지금의 영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적었다.
영국의 현재 차량수는 약2천3백만대로 우측통행을 실시할 경우 이들 차량의 운전석을 왼쪽으로 옮기는데 드는 비용도 문제지만 우선 꼭 필요한 도로표지판을 모두 바꾸는데만도 약20억파운드(2조7천억원)가 들 것으로 추정된다.
그밖에도 왼쪽에 출입문이 달린 11만5천대의 시내버스도 모두 폐기처분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지난 71년 영국은 12진법으로 되어 있던 화폐단위를 10진법으로 변경했다. 당시 영국은 약 1억∼-1억5천만파운드에 달하는 비용을 써야 했으며 국민들중 상당수는 큰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좌측통행을 우측통행으로 바꾸는데는 이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드는 것은 분명하지만 관습을 소중히 여기는 영국 국민들의 반발도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닐 것으로 전망된다.<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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