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위상! 한국의 노블리스 교수] ① 추락하는 권위 초라한 知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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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학문과 지성의 절대지존으로 추앙받던 교수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비틀대기 시작했다. 대학은 기업처럼 변했고, 교수의 권위는 추락하고 있다. 비판적 지식인과 전문적 기능인의 기로에 선 한국의 교수는 어디로 갈 것인가?


경북의 한 사립대 국문과 P교수는 입시철만 되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자신의 학과가 비인기학과라는 이유로 대학 측이 직접 학생을 모집해 오라고 밖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명색이 교수라고 신입생을 모집하도록 강요당하는 것이 내키지 않지만 P교수는 “내 입장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입생이 정원에 미달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어쩔 수 없이 ‘세일즈’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P교수는 우선 자신이 나온 고등학교부터 찾는다. 고3 담임교사들을 만나 학생들이 자신의 대학에 지원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다. 그래도 ‘동문 교수’가 후배를 유치하기 위해 모교를 찾는 일은 그런대로 양해해 주는 편이다. 학교 홍보자료와 기념품을 싸들고 모교가 아닌 인근 고등학교를 전전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다.

같은 고민을 하는 지방 사립대 L교수는 “요즘은 입시철이면 아예 인근 고등학교 정문에 ‘대학교수 출입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대놓고 대학교수를 ‘잡상인’ 취급하는 것이다. L교수는 “과거 ‘전문대 교수 출입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는 것을 볼 때만 해도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이제는 지방대 비인기학과 교수는 ‘교수’ 대접을 못 받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달라진 교수사회 풍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남의 한 사립대에 근무하는 K교수는 지난해 11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들었다. 수강생 중 출석부에만 이름이 올라 있고, 단 한 번도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학생이 있었다. 끝내 중간고사 때까지 나타나지 않아 당연히 F학점을 주었다.

그런데 성적표가 발송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과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학생이 낙제하지 않도록 적당히 후한 점수를 다시 주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학과장은 “그 학생은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조건으로 입학했다”며 “다른 과에도 그런 학생이 몇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학생을 모셔오는 것도 모자라, 그렇게 ‘모신’ 학생을 한 번 가르쳐 보지도 못하고 졸업장을 주어야 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교수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신입생 모집 강요…고등학교서 대학교수 ‘잡상인’취급
■ 조교수 도중하차 속출…부교수도 50% 정년 못 채워
■ 비(非)정년 트랙 교수는 승진 원천 차단, 시간강사 대접
■ 돈벌이 사업 펴다 악덕 CEO로 전락하기도
■ 논문 부담에 수입도 양극화…연봉차 무려 17배

입시철, 세일즈맨으로 전락한 지성

사실 10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교수만큼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직업도 없었다. 되기 어려워 그렇지, 한번 교수로 임용되면 정년이 보장되고 퇴임 후에도 원하면 명예교수로 일할 수 있었다. 또 대학 안에서든 밖에서든 연구와 교육에 간섭받는 일이 거의 없었다. 모든 연구와 강의는 자신이 결정하고 수행하면 그만이었다.

출퇴근 시간에 구애받지도 않았다. 게다가 방학은 물론, 5~7년마다 연구년제(또는 안식년제)가 있어 해외 대학의 방문교수로 갈 수도 있었다. 여기에 ‘자유로운 지성’이라는 사회적 명예까지 따라다녔다.

▶생존을 위협받는 대학이 늘어나면서 대학 교수들도 생존을 위해 거리투쟁에 나서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교수는 그래서 학자로서나 개인적으로 매우 괜찮은 여러 혜택을 누렸다. 교수는 속세(?)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던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랬다. 교수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그 위상이 다르다.

최근에는 대학마다 다양한 형태의 교수가 생겨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수는 전통적으로, 또 법률적으로 크게 연구·강의·봉사 세 가지 역할을 하는 직업인으로 인식돼 왔다. 한마디로 교수란 ‘학문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회에 봉사하는 직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교수의 정확한 범위는 법적 정의와 행정적 의미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현행 고등교육법은 대학 교원을 (정)교수·부교수·조교수·전임강사로 구분하지만, 교육부는 직급이 전임강사 이상인 경우(조교수·부교수·교수)를 통상 ‘전임교원’으로 정의한다.

흔히 부르는 교수는 바로 이 전임교원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법률적으로, 행정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교수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든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지위와 명예를 지켜온 것이 사실이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교수의 위상을 뒤흔드는 일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게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모 지방대에서는 입시철에 ‘원서접수 당일 합격 발표’라는 코미디 같은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한다. 사정이 비슷한 다른 대학 B교수는 “원서만 내면 들어올 수 있는 대학의 교수를 어떤 학생이 교수로 생각하겠느냐”며 “대학은 졸업장을 파는 기업이고, 교수는 손님이 원하는 학위를 만들어주는 근로자에 지나지 않는다”며 분개했다. 이쯤 되면 “이러고도 우리가 교수입니까”라는 교수들의 하소연을 항변으로 들어야 한다.

2002년 이후 임용은 모두 ‘계약제 교수’

이런 식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대학이 계속 늘고 있고, 그만큼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교수도 많아지고 있다. 서울·수도권 대학과 지방대, 국·공립대와 사립대,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 교수들 사이의 양극화 현상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이른바 명문대에는 언제나 학생이 북적대고, 이름 없는 지방대에서는 정원미달 사태가 속출한다. 이 같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교수사회는 우려하고 있다.

전남의 한 사립대 L교수는 “비인기학과는 졸업해도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고, 그래서 정원에 미달해 폐과되면 해당 학과 교수는 설 강단이 없어진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학생들처럼 전과하거나 다른 학교로 편입할 처지도 못 된다.

지방대 철학과 L교수는 “다른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학위를 새로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그것은 그동안 자신의 학문적 성과와 자존심을 스스로 모독하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 같은 수모를 견디다 못해 다른 길을 찾는 교수도 생겨나고 있다. 전남의 한 사립대 S교수는 지난해 인근 고등학교 교사로 쉽지 않은 변신을 했다. 수년째 학생 모집에 나서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이 교수는 때마침 들어온 제안을 뿌리칠 용기가 없었다고 한다.

이임광_월간중앙 객원기자(llkhkb@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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