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투쟁의 산 역사교육장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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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3·1독립운동 73주년을 앞두고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복원하게 된 것(본지 28일자 1면·일부지방 29일보도)은 늦은 감이 있지만 잊혀져 가는 일제치하의 독립투쟁을 되새겨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복원될 임정건물은 1926년부터 32년까지 백범 김구 선생이 주도한 임시정부가 청사로 사용했던 곳인데 이곳의 6년간이 특히 임시정부로서는 침체를 벗고 적극적인 항일투쟁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독립투쟁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중국측과 복원에 대한 합의에 이르기까지에는 아직 국교가 정상화되어 있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2년 전 정부차원에서 임정건물을 국내로 옮겨와 독립기념관에 설치한다는 구상 아래 중국 측과 협의를 벌였으나 북한측을 의식한 중국당국이 거부해 성사되지 못했었다.
이와는 별도로 삼성물산이 민족정기고양 운동의 일환으로 임정청사복원을 추진하게 되면서 민간외교 차원에서 접근, 성공을 보게 된 것이다.
삼성물산은 상해 임정건물이 방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복원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90년11월부터 상해지점을 통해 임정건물의 현 상태 및 중국측의 태도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실태파악을 해본 결과 상해지역에서만 임정은 일곱 번이나 청사를 옮겨 다녔다.
이 가운데 윤봉길의사 및 이봉창의사 등이 의거를 일으키면서 항일투쟁이 가장 활발했던 시대에 청사로 쓰였으며 상해지역에서는 마지막으로 있었던 노만구 마당로 보경리 306의 4호 건물이 물망에 올랐다. 이 건물은 건평 31평의 3층 짜리 연립가옥으로 최근까지 5가구 가 모여 살다 현재 1가구만 남아있다.
상해시와 민간외교의 이점을 십분 활용, 끈질긴 협상을 벌인 끝에 지난해 3월 삼성물산 측이 제의한, 임시정부건물 복원의향서 대신 서한(letter)으로 대신하자는 상해시 측의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내면서 협상은 급진전됐다.
상해시가 공식적인 의향서를 꺼리고 서한방식을 제안한 것은 미 수교된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피하고 북한측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협상 중 북한측을 의식한 상해시가 임정건물의 명칭을 「구 한국유망 정부 구지」라는 불분명한 용어를 고집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모르되 명칭만큼은 우리의 것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용어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판단,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이 점은 양보할 수 없다는 점을 상해시에 분명히 전달했다.
또 외국인의 주택소유를 금지하는 상해시 법에 따라 임정건물의 소유권은 상해시가 계속 유지하도록 타결이 됐다.
우리측은 중국측의 건축기술에 의심을 품고 우리가 직접 복원할 것을 제의했으나 중국이 세계적인 문화재 복원기술국 이어서 일본에서도 배워간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중국측에 맡기기로 했다.
임정청사가 복원되면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중국지역에서 항일투쟁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산 역사교육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상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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