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시인의 참회(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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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프랑스는 2차대전 직후 전시중 나치에 협력했던 많은 사람들을 단죄했다. 그 가운데는 문인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그런 과정을 거친 프랑스에서도 「친나치문학」이 망령처럼 되살아나 심심찮게 문단의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86년에도 그 망령은 되살아났다. 전시중 프랑스 리옹시의 게슈타포 두목이었던 「인간백정」클라우스 바비가 재판에 회부되면서부터였다.
당시 미국의 뉴욕타임스 북리뷰는 여류작가 바브라 솔로몬의 글을 통해 친나치문학을 비판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85년도 노벨문학상의 선정과정에도 나치의 망령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해의 노벨문학상은 당연히 누보로망계열의 선두작가 로브그리예에게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같은 계열의 클로드 시몽이 수상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몽은 레지스탕스의 대표적 문인인데 비해 반유대인 혈통의 로브그리예는 학생때부터 「나치협력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친독성향이 강했다.
어제날짜 중앙일보 사회면을 보면 원로시인 미당 서정주씨의 『나도 친일문학을 했다』는 기사가 실려 눈길을 끈다.
한 시전문지(『시와 시학』봄호)의 대담내용을 인용한 이 기사에서 미당은 『나도 남들처럼 창씨개명을 했으며 일본인들의 요구대로 작품을 쓴 일이 있다』고 토로하면서 『젊은 그 시절,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로 새삼 아픔으로 다가온다』고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미당이 「젊은 그 시절」이라고 말한 그 시절은 다름아닌 일본이 진주만기습(41년),조선어학회사건 조작(42년),진단학회 해산(43년)에 이어 「국어(일어)상용」을 강요하면서 우리의 정신문화를 말살하려한 시절이다.
그래서 「내선일체」에 「근로보국」이 나왔고,그것도 모자라 「문장보국」까지 등장했다. 바로 이 땅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친일문학 또는 「통후문학」이 사생아처럼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입과 붓이 훼절을 했던가.
그러나 이같이 어려운 시절에도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점 부끄럼이 없기를…』기도하며 이국의 감옥에서 숨져간 윤동주·이육사같은 시인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문학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와 함께 한 노시인의 고뇌어린 참회도 우리 문학의 내일을 위해 소중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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