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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믿고 따라야 정확한 진료 가능|서정돈 교수<서울대의대·내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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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명의라는 말이 있고 비슷한말로 양의라는 말도 있다. 한글사전에는 명의는 병을 잘 고치는 이름난 의사로, 양의는 의술이 뛰어난 훌륭한 의사로 설명되어 있으므로 의술이 뛰어나고 병을 잘 고치는 것으로 이름난 훌륭한 의사를 명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환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질병을 쉽게 정확하게 진단해 내거나, 다른 곳에서는 쉽게 치료되지 않던 증상을 깨끗하게 고쳐주거나, 남들은 어렵다는 수술을 거뜬하게 해내는 의사가 각자에게는 명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의를 찾을 때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실력 외에 다른 요인에 의해 우연히·명의가 되기도 하고 형편없는 의사로 낙인이 찍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어 병이 시작된지 상당히 오래된 후에 찾아오는 환자가 많을수록 명의가 되기 쉽다. 왜냐하면 병이 처음 시작될 때는 증상이 모호하거나 특징적이지 못해 진단이 어렵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모든 전형적인 증상이 다 나타나 진단이 훨씬 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별 이유 없이 소화가 되지 않아서 동네 의원에 갔더니 단순한 위염일 가능성이 많다고 해서 그대로 치료받았으나 증상이 자주 재발되어 대학병원을 찾아 내시경검사를 받은 끝에 위암으로 진단 받았다고 하자. 이렇게 되면 대학병원 의사는 소위 명의가 되고 동네 의원의 의사는 나쁜 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소화불량증상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내시경검사를 할 수는 없는 것이며 위암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단순한 소화불량 증상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 이런 결론을 간단히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감기와 꼭 같은 증상으로 시작되는 질병도 무수히 많다. 이때도 나중에 진찰한 의사는 쉽게 명의가 될 수 있고, 처음 진찰한 사람은 실력이 없는 의사로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실력이 같더라고 주택가에서 진료하는 의사보다 쉽게 찾아가기 어려운 큰 병원의 의사가 명의라는 평가를 받을 기회가 더 많다는 농담이 생기는 것이다. 환자가 협조하지 않으면 아무리 실력이 있는 의사라 하더라도 명의가 될 수 없고 의사와 환자가 함께 노력할 때 진단과 치료도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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