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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벼랑에 선 교육/21세기 대비위한 긴급진단:1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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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배보다 더 큰 배꼽 사교육비 과중/GNP 6.8%… 수험생 둔 집 가계 “흔들”/국교 입학전에 피아노·미술 등은 기본
「내자식만 잘 가르치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교육열로 마구잡이 조기교육·「망국」 과외열풍이 우리교육의 깊은 병이 된지는 벌써 오래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고식적인 불법과외 단속엄포뿐 이렇다할 처방이 없고 병은 고질로 굳어간다.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지출되는 부교재비·학용품비·과외교육비·단체활동비·교통비 등 이른바 사교육비의 총규모는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에 따르면 90년 9조4천억원 수준으로 추정됐다.
이는 같은해 총공교육비 8조6천9백억원보다 자그마치 7천억원이 많은 것으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교육투자의 비효율성을 드러낸 것이라교 교육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 사교육비 규모는 90년 불변가격을 기준으로 68년 8천8백억원이던 것이 82년 3조9백42억원,90년 9조4천억원으로 22년사이 10.6배로 커졌다. 75년부터 90년까지 GNP대비 공교육비의 비율이 2.34%에서 3.65%로 느림보걸음을 하는 동안 사교육비는 2.22%에서 6.79%로 뛴 것이다.
자녀의 성공과 출세를 최우선 목표로 삼는 우리 학부모들의 욕심은 일찌감치 과소비로 출발한다.
○조기교육 강박관념
어려서부터 길을 잘 들여야 경쟁에서 계속 앞서나갈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일반화된 상태다.
이 때문에 밤새워 줄을 서 좋다는 유치원에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각종 조기교육학원에 보낸다.
피아노·속셈·미술·한글·수영·웅변·태권도·주산….
남편을 따라 해외에 나갔다가 귀국한 직후 지난해 아들을 국민학교에 입학시킨 안모씨(35·서울 압구정동)는 어느날 담임교사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고 놀랐다. 안씨의 아들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그림솜씨가 크게 뒤지니 개별지도를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담임교사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입학전에 미술학원을 다녀 전반적인 수준이 옛날같지 않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실제로 서울 강남지역의 경우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유치원은 물론 각종 학습지 공부와 함께 2∼3개씩의 특기재능학원에 보내는 실정이다.
학부모들의 높은 조기교육열을 반영하듯 전국 각시·도교육청에 등록된 예능계학원만도 1만2천8백여개에 이른다.
이같은 어린이들의 조기교육에 대해 김경규 서울 도곡국교 교감은 『많은 학부모들이 과열경쟁에 사로잡혀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전에 이것저것 충분히 가르쳐야 안심을 하는 것같다』며 『그러나 취학전 교육이 한글·셈 등 지역영역에 치우치면 입학후 학교수업에 흥미를 잃게돼 문제아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인 결과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월급 절반이상 쏟아
그러나 이상교육붐은 대도시에서 중소도시로,다시 농촌으로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사교육비 지출의 대종은 뭐니뭐니해도 입시과외다.
서울 반포동에 사는 주부 유모씨(48)는 고3이 되는 딸과 고교에 진학하는 아들의 영어·수학 과외비로 매달 각각 60만원과 50만원을 쓰고있다. 참고서값과 독서실 비용을 합치면 두 아이의 공부를 뒷바라지 하는데 드는 교육비가 월 1백30만원이 된다. 1년치 학교등록금 1백만원보다 한달 과외비가 많은 것이다.
유씨는 『남편 월급의 절반이상을 과외비로 써 부담이 되지만 좋은 대학을 보내려니 안시킬수도 없다』고 말한다. 80년 7·30교육개혁조치로 금지됐던 대학생 과외교습이 허용된후 과외는 날로 증가해 이제 70년대 후반기의 「망국병」을 떠올릴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지난해 6월 YMCA가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등 5대도시의 중·고교생 3천명과 학부모 6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과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35%의 학생이 과외(학원수강 포함)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의 경우 52%가 과외를 하고 있다고 응답해 18%인 광주와 큰 차이를 보였다.
수적인 증가뿐만 아니라 그 유형에서도 과외가 과열되는 양상이다.
전문강사에 의한 족집게과외·반짝과외·오피스텔과외·팩시밀리과외 등 음성적인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 교사자격증을 갖고도 교단에 서지못하는 예비교사들이 아예 과외교사로 나서는가 하면 직장을 버리고 과외교습에 매달리는 경우도 적지않아 과외가 하나의 음성서비스직종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느낌이다.
비용도 고액화되는 추세다.
YWCA조사에서는 과외비가 평균 27만6천1백원,학원수강비는 10만3백원으로 가구당 월수입의 11.1%를 차지했다. 50만원이상의 과외도 11.4%였다.
이 때문에 과외를 시키는 학부모의 75%가 가계에 부담이 된다고 했으며 9%는 과외비를 조달하기 위해 부업,심지어 파출부까지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과외로 인한 경제적·심리적 부담이 큰데도 학부모들이 과외를 시키는 것은 과외가 성적향상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본고사 부활에 걱정
YWCA보고서에 따르면 과외 학부모의 81%와 학생의 61%가 과외를 통해 성적이 올랐다고 응답했으며 과외를 시키지 않은 학부모의 52%는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학부모들이 과외교육에 쏟아붓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한국교육개발원 강무섭 박사팀이 90년부터 2년동안 전국의 중학생과 인문계 고교생 각 3천명,90년 대학신입생 2천5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과외실태조사에서는 총과외비 규모를 연간 1조2천억원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이는 조사당시 과외를 했던 학생수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어서 실제규모는 더 클것이라는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일선고교에서는 94학년도부터 주요 대학들이 본고사를 실시함에 따라 올해부터는 과외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서울 인헌고 최종근 교장은 『중·고등학교의 과외는 대입시험문제의 유형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대학의 역할을 강조하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수업에 충족감을 느낄수 있도록 우열반을 편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교육개발원 공은배 재정연구부장은 『80년대 후반에 사교육비가 공교육비를 초과,역전현상이 빚어진 것은 입시과외와 조기교육열풍에 의한 것』이라고 풀이하고 『지나친 사교육비는 계층간 위화감과 교육적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사교육비의 공교육비화를 서둘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이헌영기자>
◎“어떻게든 내자식만 교육” 이기심 버려야/이미나 교수 홍익대·교육학(전문가 진단)
과외에 대한 처방은 교육외적 처방과 교육내적 처방이라는 두가지를 생각해 볼수 있다.
교육외적 처방이라함은 교육의 바깥장을 변화시킴으로써 과외에 대한 유인을 줄이자는 것이다. 예컨대 노동시장에서 학력간 임금격차를 줄이거나,블루 칼러들도 경영의 상부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승진사다리를 제공함으로써 굳이 대학을 가지않아도 되는 출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대책이 필수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시장의 수요­공급 메커니즘이나 기업문화 등의 여러가지 복잡한 사회구조적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므로 과외완화 대책으로 시도하기에는 그다지 효율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과열과외의 대책을 현재의 교육제도를 안에서 찾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접근이 되겠다.
제일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대학입시 운영방식의 개선이다. 이것은 인적·물적 노력이 가장 적게 투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시험문제는 학교에서 받은 교육내용의 범위에서 출제되어야 된다. 그런데 이것이 곧 쉬운 문제를 출제하여야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번 대입학력고사와 같이 쉬운 출제는 고득점자의 변별력을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학교교육내용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문제여야 한다. 이 경우 과외를 통해 교과서 밖의 내용을 학습할 필요도 없어지며,쉬운 문제라서 변별력이 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창의적인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문제출제자를 폭넓게 신중히 선정해야할 것이다.
또 대학입시가 보다 단순해져야 된다. 1994년두터 실시될 새 입시제도는 과외의 전성시대를 불러올 것이 우려된다. 종류가 다양하고 또 낯설기까지한 새 평가방식이 무더기로 출현하여 공부부담이 가중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과중한 짐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학교교사들의 「내신제 대비 과외」,전문(입시학원) 과외교사가 응시대학에 맞춰 전문적인 대비를 해주는 「본고사대비 과외」,학교 교과목과는 다른 낯선 「수학능력시험대비 과외」가 성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가장 잘 예측해주는 전형방식을,그것도 되도록 간소한 방식으로 평가하는 입시제도를 개발해야 된다. 그 때라야 학생들은 혼자서 과외없이 입시를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입시처방이외에 과외대책으로 또 하나 내세울수 있는 것은 학교수업의 상당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대다수의 학생들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수업내용을 이해 못하는 까닭의 하나로 교과서 내용이 지나치게 어려우며 배워야할 내용이 많다는 사실이 지적될수 있겠다.
개인차를 고려한 수업을 하지 못하는 것도 학교수업내용을 잘 이해못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다. 학습진도와 능력을 고려한 개별화 수업을 위해 선택과목제를 활용하거나 우열반등의 제도를 생각해 볼수 있다.
이제까지 제시한 것의 핵심 아이디어는 교육문제가 생겨났을 때 우리는 이것을 공교육비로 공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시민의식이 내 자녀의 교육만을 사교육비로 사적인 차원에서 빨리 해결하고 보자는 단계에서부터 벗어나야겠다. 이것이 과열과외를 진정시키고 교육을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고 보여진다.
그 밖에 우리의 청소년들이 살아 갈 시대는 학벌이 아닌 능력이 중요한 사회이며 생존과 출세가 아닌 존재와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임을 자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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