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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서 쓸만한 이름 “싹쓸이”/우리말 상표 동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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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웃돈겨냥 브로커 등장… 북한 고유명사도 마구 등록/국적불명 조어남발 부채질
실제 사용여부에 관계없이 먼저 등록하는 사람과 기업에 독점권을 주는 상표 선등록주의의 보완이 시급하다. 특허청에 따르면 1월말 현재 국내 총상표등록건수는 24만8천5백93개로 국어대사전에 수록된 10만∼15만단어를 훨씬 초과해 신상품의 경우 새로운 우리말 상표를 찾기 힘들어 국적불명의 얼치기 조어상표가 범람하는 실정이다. 등록된 상표 가운데 대기업들의 상표 독과점현상도 두드러져 대형 생필품업체인 럭키가 4천개,화장품업체인 태평양화학이 7천개 등 보통 2천∼3천개의 상표를 관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립국어연구원의 조사결과 대상업체 및 상표 1천3백59개 가운데 우리말상표는 26%에 불과하고 외래어와 한자간판이 74%에 달하며 이중 절반 가까이가 한글과 영어를 혼합한 조어상표로 나타났다.
일부 기업들은 아예 국어사전을 뒤져 아직 등록되지 않은 좋은 단어들만 골라 무더기로 상표등록을 하는 바람에 우리말 상표는 갈수록 씨가 마르고 있는 실정이다.
○사용률은 15%선
이들 대기업들의 등록상표중 실제 사용비율은 10∼1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유사상표방지와 「언제 사용될지 모르는」 예비상표들로 기업측에서도 선등록주의로 인한 상표관리에 상당한 낭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상표브로커들이 난립,통일무드를 타고 금강산·백두산 등은 물론 평양·해주·청진 등 북한의 고유명사에 대한 무더기 상표등록 바람이 불고 있다.
○등록땐 10년 독점
통일이 되면 남한 특허청에 먼저 등록한 사람이 선점권을 갖고 유망한 상표에 대해서는 프리미엄을 붙여 팔수 있기 때문이다.
선등록주의를 규정하고 있는 상표법에 따르면 상표당 출원료와 등록료 19만원만 내면 10년동안 배타적인 독점권을 가지게 된다. 3년이상 사용을 하지 않을 경우 다른 사람의 심판청구에 의해 상표를 취소시킬수 있지만 우체국의 탁송화물 영수증이나 1만원 안팎의 간단한 광고흔적만 남겨놓아도 등록을 취소시킬수 없게 되어 있다. 특허청도 『현재 상표를 사용하는 현장에 대한 실사권한이 없어 상표를 실제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먼저 등록한 기업이나 개인에 대한 독점권을 제한하기는 힘든 실정』이라고 밝혔다.
○법 개정하면 혼란
이에 비해 선사용주의를 취하고 있는 미국은 상표를 실제로 사용하는 쪽이 상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 분쟁의 가능성은 다소 높지만 상표의 독과점현상이 나타나지 않아 상표개발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이에 대해 특허청측은 『현재의 상표법 아래서는 상표의 독과점을 피할수 없고 이에 따른 좋은 상표의 개발여지가 상대적으로 좁은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현재의 선등록주의를 선사용주의로 바꿀 경우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당장에는 실제 사용여부를 감독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해 상표 가수요를 줄이고 기업들도 싹쓸이 등록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철호·오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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