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고향 찾아가는 미군 유해 외면당하는 국군 포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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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판문점을 통해 한국전쟁 당시 북한 땅에서 숨진 미군 유해 6구가 송환된다. 빌 리처드슨 미 뉴멕시코주 주지사 일행의 평양 방문(8~11일)에 맞춘 북한의 조치다. 2005년 5월 중단됐던 미군 유해 발굴이 재개된 것은 2.13 합의 이후 불고 있는 워싱턴과 평양 간의 화해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군 유해를 돌려보낸 북한의 태도는 인도주의 정신에 비춰 평가할 만하다. 미 정부로부터 거액의 대가를 챙기려는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굳이 나무랄 이유는 없다. 그 돈이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제대로 쓰인다면 말이다.

문제는 국군포로 문제를 대하는 북한의 태도다. 억류 43년 만에 국군포로로선 처음으로 1994년 귀환한 조창호(지난해 11월 사망)씨를 비롯해 탈북 노병(老兵)들의 증언으로 확보된 명단만 500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북한은 "포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뺌해 왔다.

남북 당국 회담이나 적십자 채널에서 북측은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북한이 바라던 대로 이른바 비전향 장기수 60여 명을 2000년 9월 모두 북으로 보내줬지만 북측은 7년째 상응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반 세기 전 묻힌 미군의 뼛조각과 군번표(dog tag)까지 꼼꼼히 챙겨 건네주는 태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틈만 나면 "미제 타도"를 외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유해 송환을 워싱턴 정가의 환심을 사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 민족끼리'란 구호가 무색하게 동족 간의 인도주의 문제 해결은 외면하고 있다.

평안북도 운산 지역에서 북한 인민무력부 소속 발굴단이 미군 관계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군 유해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운산은 함경남도 장진호와 함께 6.25 최대의 격전지다.[JPAC 홈페이지]

미국은 96년 이후 자국 병사의 유해 229구를 받는 대가로 북한에 모두 현금 1500만 달러를 건넸다. 이를 두고 우리 정부는 북 핵실험 이후 금강산 관광 대가 지급이 문제되자 "미국도 유해 발굴 대가로 현금을 건넸는데 문제될 게 뭐냐"고 주장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그렇게 퍼주고도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해결 못한 게 바로 한.미 간의 대북 접근 차이"란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다. 노무현 정부는 한때 북한의 입장을 고려한 듯 국군포로를 '본의 아니게 북에 남게 된 분들'로 표현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국군포로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인식이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국군포로 송환을 위해 효과적으로 접근했다면 그 가족의 한(恨)이 이토록 깊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와이 히컴 공군기지 안에 있는 미군 실종자.포로전담사령부(JPAC)는 매년 1억 달러가 넘는 돈을 유해 발굴에 쏟아붓는다. 400여 명의 엄선된 군인들이 세계 각지의 미군 전투지역에서 조사.발굴작업을 한다. 본부 건물 곳곳에는 '그들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라는 모토가 걸려 있다.

때마침 10일부터 금강산에선 남북 적십자회담이 열리고 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여덟 번째 회담이다. 하지만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국군포로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없다면 앞으로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는가.

이영종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