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샌 장애인 고용장려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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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서울 영등포의 인력용업 업체인 D사는 2000년과 2001년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상시 근로자의 2%)을 지키지 못해 잇따라 불이행 부담금 800만원씩을 냈다. 부담금이 아깝다고 생각한 D사의 대표 최모(57)씨는 '비법'을 알게 됐다. 장애인을 고용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면 부담금을 안 낼뿐더러 장애인고용장려금까지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D사는 직업이 없는 중증 장애인에게 매달 5만~10만원을 주는 조건으로 명의를 빌렸다. 임금수령확인서.근로계약서 등을 위조하고 임금대장.급여이체 명세서를 허위로 작성했다. 70만~80만원 월급을 받는 장애인 근로자를 고용한 것처럼 꾸몄다. 2002년에도 의무고용 비율을 지키지 못했던 D사는 부담금 1200만원을 내야 했지만 오히려 장애인 고용촉진공단으로부터 433만원의 고용장려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 D사는 지난해까지 2억4200만원의 고용장려금을 불법으로 타냈다.

#2.음향기기 제조업체인 K사의 대표 이모(50)씨는 2002년 3월 장모(21)씨 등 장애인 학교를 졸업한 정신지체 1급 장애인 7명을 채용했다. 장씨 등은 소켓을 끼는 등 단순작업을 맡았다. 이씨는 이들에게 매달 70만~80만원을 준다고 임금대장을 가짜로 작성하고 공단으로부터 장려금 60만원을 받아갔다. 실제로 장애인에게 준 돈은 40만원에 불과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장애인이 근무하는 것처럼 거짓 서류를 만들거나 임금을 적게 주는 수법으로 장애인 고용장려금을 빼돌린 서울.경기 지역의 중소업체 6개를 적발했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은 D사 대표 최씨와 회장 이모(60)씨를 사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K사 대표 이씨 등 1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 업체가 부당으로 타낸 장려금은 17억원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장애인 고용 장려금 제도를 2000년 도입했다.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의 민간 기업이 근로자의 2%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할 경우 매달 고용 장애인 한 사람당 30만~60만원씩 지원받는다. 해마다 1000억원 정도가 이 사업에 투입되고 있다.

문제는 장려금이 제대로 지급됐는지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 사이에선 장려금 챙기기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D사의 최씨는 "회사 사정이 어려운 가운데 업계 사람으로부터 부정 수급 요령을 배웠다"고 경찰에서 말했다.

현행법상 장애인 고용촉진공단이 불법 사실을 적발하더라도 해당 업체를 고발하는 게 의무화돼 있지 않다. 또 장려금 심사는 서류심사 위주로 진행하는 게 보통이다. 경찰은 공단에 대한 감사와 고용장려금 부정 수급 업주에 대한 의무고발 조항 신설을 노동부에 권고했다.

이철재.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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